도망치는 인생에서 도망쳐라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행 13:13)
어머니는 입맛이 없다는 나를 위해 평소 내가 좋아하던 죽을 끓여 가져다 주셨다. 맛난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며 후각을 자극했지만 통 식욕이 없다. 며칠째 먹지 못해 기운이 없지만 난 지금 햇살이 날아드는 창가에서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내 생각을 점령한 채 떠나질 않는 기억의 포로가 되어서 말이다.
얼마 전 인척인 바나바의 권유로 사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긴 여정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가서 복음을 전한 후 다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을 했다. 거기서 다시 비시디아의 안디옥으로 갈 예정이었다.
처음엔 기대와 설렘으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차츰 난 기대와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세상을 유람하는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특히 바보에서 우리 일행을 격하게 대적하며 총독으로 하여금 우리를 믿지 못하도록 힘쓰는 마술사 엘루마를 보면서 난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받게 될 고난의 서곡에 지나지 않음을 직감했다.
버가까지 가는 배 안에서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 머릿 속에서는 나를 쳐다보던 엘루마의 적개심에 불타는 일그러진 눈이 떠나질 않았다. 그것이 앞으로 내가 복음을 전하며 직면하게 될 사람들의 눈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갑자기 기대와 설렘이 두려움으로 변하여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쳐 날뛰는 두려움 앞에서 난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버가에 도착하자마자 난 바나바에게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통보했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바나바는 내 생각을 다 읽고 있었지만 그냥 속아주었다. 그런 바나바의 기도를 받고 난 즉시 버가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픈 것은 지금까지 내가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는 것 때문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도 급한 마음에 이불만 걸친 채 그분을 따라가다가 붙잡히자 이불을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도망을 쳤었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 난 또다시 도망을 친 것이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난 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작은 어려움만 있어도 난 제법 부유한 어머니에게로 도망쳐 숨었다. 어머니가 문제를 해결해 준 다음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신앙생활도 그랬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처럼 하나님 뒤로 도망쳐 꼭꼭 숨었다. 삶과 단절한 채 기도를 핑계로 신앙의 골방에 숨어 나오질 않았다. 그저 힘겨운 순간이 어서 지나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을 막연하게 기다렸다. 단 한 번도 현실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구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몰랐던 것은 신앙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문제에 용기 있게 직면한 나를 통해 그분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통로라는 것이다. 도망치는 인생에서 도망쳐야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