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력에 따른 대강절 기간을 보내고 있다. 대강절은 라틴어 아트벤투스(adventus)에서 온 말로 ‘온다’(coming)란 뜻이다.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매년 성탄절을 앞둔 4주간 지킨다.

대강절 주일예배에서는 대강절 촛불을 점화한다. 촛대는 모두 네 개가 준비 되어 있고,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큰 촛대가 있다. 매주일 하나씩 점화하고, 큰 촛불은 성탄절에 점화한다. 주일마다 촛불을 더하는 것은 ‘빛’되신 그리스도가 오고 있다는 상징적 표시이다.

오늘 우리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채 마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마치 캄캄한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 그 어둠 가운데 헤매는 인생들을 위한 참 빛으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요1:9).

흔히들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 부른다. 흑인들이 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인종학적인 분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근과 가난, 질병, 부패한 권력자들의 착취, 여러가지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대륙이란 의미가 더 피부에 와 닿는 표현일지 모른다. 실제로 이들은 검은색에 열등의식, 피해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의 혈관엔 ‘검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스스로 비하하기도 하며, 다투고 욕설이 오가는 상황에서 “너는 정말 검다”고 상대방에게 퍼붓는 말도 들어봤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 깊은 한숨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원망하고 푸념해 보지만 이렇다 할 소망을 찾지 못하고 타고난 낙천성으로 풀어보려고만 한다. 하지만 때론 성난 군중이 되어 도적질하다 잡힌 사람을 현장에서 돌로 치고, 매를 때려 죽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젊은 외교관인 윤상욱은 자신의 아프리카 경험을 책에 담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이다.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나라를 주로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의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이 책에 잘 설명하고 있다.

대강절을 앞두고 필자는 카메룬을 다녀왔다. 카메룬은 우리 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 다섯 가정과 한 분의 독신 선교사가 좋은 팀워크를 이루며 사역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번에 비전의과대학 개교와 카메룬 복음신학대학 졸업식, 그리고 기숙사 봉헌식과 같은 큰 행사들이 있었다. 교단 총회장을 위시하여, 교단 선교 책임자들이 방문하여 선교사역을 치하하고 격려하였다.

열악한 의료환경 때문에 절망하고 한숨 짓는 이들을 위해 의료진을 양성하고,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일에 헌신하여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선교사님들. “이 선교사님들이야말로 땅 끝에서 주님의 빛을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구나!…” 그들의 얼굴에서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느낄 수 있었다.

중세 수도사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두운 곳에 당신의 빛을, 설움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전하는 사신이 되게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땅 끝 사람들이 바로 카메룬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을 통하여 참 빛을 전달받은 현지 교인들의 그 환한 얼굴은 검은 진주보다 아름다웠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간증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주님이 넣어주신 빛이 보였다.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이 작은 나의 빛 비취게 할거야(x2)~ 빛내리 빛내리 빛내리.”

이 세상은 진리의 빛을 찾고 싶어한다.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빛을 기대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한다(마 5:14~16).

땅 끝에서 비치는 빛, 타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이 대강절 기간에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 이웃에게 비쳐야 할 주님의 빛이 이미 내 안에 있음을 생각해 본다. 이번 대강절에 어느 때보다 더 찬란하게 빛되신 주님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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