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교회력의 시작인 대강절(대림절)을 지내고 있다. 대강절이라 불리는 ‘Advent'라는 말은 ‘온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했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는 신앙과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표현된다. 이 신앙의 표현으로서의 대강절 장식은 상록 식물과 초들로 장식된다. 

고대 로마인들은 농신제(Saturnalia, 12월 17~23일) 기간에 태양의 비침을 소원하는 동시에 악을 제압한다는 의미에서 촛불을 밝혔다. 이런 이교적 관습은 크리스마스를 밝히는 주요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고정하여 지키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농신제의 날인 동짓날을 채택한 이후부터였다.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굳이 성탄의 날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와 더불어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 기독교 탄생의 날, 이교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세계로의 전환, 이교적 삶의 청산과 기독교적 삶의 시작이란 의미에서 그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삼은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 촛불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창문에 촛불을 밝혀놓았는데, 이는 그들에게 쉼터와 온정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대강절기에 네 개의 초를 매주 한 개씩 순차적으로 밝히는데, 순차적으로 한 개씩 세 개의 보라색 초를 밝히고 성탄절에는 분홍색을 밝힌다. 어떤 전통에서는 분홍 초를 성탄 전야에 밝히고 ‘그리스도의 촛불’이라 불리는 흰색 초를 성탄절에 밝히기도 한다. 각 초의 의미는 소망, 평화, 기쁨 그리고 사랑이다. 물론 기쁨의 초는 분홍색이며, 다섯 번째 초 즉,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은 흰색이다.

그러면 왜 한 개의 초는 분홍색을 사용할까? 교회에서 처음 대강절 초를 장식한 것은 대략 6세기경부터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 초기 절기는 오직 사순절(주일을 제외한 날)과 부활절 뿐이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회상하며 금욕과 기도로 보냈다. 이때의 전통적인 색이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은 슬픔, 회개, 수난을 상징하며, 주님의 왕권을 상징한다.

사순절 동안 교회는 일곱 개의 촛불을 밝혔다. 주님의 수난과 소망을 위한 고통, 기쁨을 위한 고통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활의 예표가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사순절 셋째 주일에 교회는 금식보다는 애찬을 나눴다. 이 특별한 주일에는 성직자가 분홍색의 예복을 입음으로써 다가오는 기쁨을 회상하게 했다. 또한 대강절은 작은 사순절의 의미도 담고 있었는데, 이 기간을 회개와 반성으로 지내므로 보라색을 사용했다. 교회는 사순절의 촛불을 대강절 기간으로 가져왔고 사순절 전통을 따라 한 개는 분홍색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대강절기를 밝히는 초의 불빛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이들이다. 처음 크리스마스에 베들레헴의 하늘을 비춘 별처럼, 교회는 촛불을 그 별의 상징으로 밝혀 그리스도의 빛 되심을 선포했고, 그리스도인의 빛된 삶을 다짐한다.

오늘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어둠을 밝히는 빛이 필요하지 않은가? 거창하지 않아도 따뜻한 작은 손길, 따스한 물 한 모금이 세상의 빛, 예수님을 드러낸다. 처음 크리스마스의 빛이 구유에 누운 아기를 비춘 때부터 우리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주어졌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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