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1)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으로 가나의 한 잔칫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초청받은 흥겨운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더없이 기뻐해야 할 잔칫집이 초상집으로 바뀔 상황이었습니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 사정을 알렸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기적을 행하신 일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이때에 예수님을 단순히 자신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임신 전에 천사의 수태고지나 성장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로 ‘이는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런 난감한 상황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탁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며 흔쾌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여자여’라는 호칭을 한국말로만 이해하면 상당히 불손한 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의 ‘여자여(γυναι)’라는 단어는 당시 유대사회에서 여인에 대한 최고의 존칭어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에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실 때에도 동일하게 쓰신 단어인데 그 당시 이 말은 왕후(王后)나 귀부인(貴婦人)을 부를 때에 쓰는 용어로 여인에 대한 최고의 높임말이었습니다. 주석가 바클레이에 의하면 호머의 서사시에서 오디세이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페레노프를 부른 명칭도, 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부를 때 사용한 말이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구세주로 오셨다면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구원받아야 할 한 인간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머니라는 명칭보다는 여인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을 사용하여 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말에 예수님은 일단 거절합니다. 4절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러나 완전한 거절이 아니라 내가 나설 때가 아니고 하늘 아버지의 뜻, 그분의 때를 좀 두고 보자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역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을 불러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합니다.

그 후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정결 예식을 위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하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채우되 돌 항아리 6개에다 그것도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는 시점에 정결예식에 쓰이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이나 또 아귀까지 채운 것은 단순한 순종 이상의 순종을 한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도 하인들이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한복음 2장 9~10절에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고 나옵니다. 연회장이 포도주의 맛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이 최상급의 포도주로 변화된 놀라운 변화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생애 최초의 표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일어난 이 놀라운 표적이 일어나게 된 중요한 요인을 보면 첫째, 잔칫집에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2절). 둘째,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3절). 셋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5. 7. 8절).

우리의 삶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이런 은혜가 있기 위해 예수님을 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초청하고 무슨 문제 어느 때든지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이면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합시다. 그리하면 우리들의 삶에도 기적과 표적이 따르게 될 것이고, 잔칫집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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