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7:1~12)

오늘 본문 말씀의 상황은 오므리 아들 아합이 북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던 시대입니다. 이미 여로보암이 왕으로 시작하는 이스라엘 역사는 시작될 때부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암흑기였고, 아합왕은 이스라엘의 기존 성전을 부수고 새로이 바알신전을 만들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을 숭배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홀연히 나타나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 이름으로 외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그 이름은 엘리야였습니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선포한 후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 그 시냇물을 마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먹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시냇가에 갔습니다. 하루, 몇 주, 몇 달 ‘얼마 후에’란 말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긴 세월이 흐르면서 시냇물은 마침내 말라버렸습니다. 아마도 엘리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의 경험이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그 한 번의 경험이 이후의 손쉬운 신앙생활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삶이란 늘 안정적이고 안락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야는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때 드디어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9절입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으니라.”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엘리야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엘리야로 하여금 주저하게 하는 두 가지 환경적인 걸림돌이 있습니다. 먼저, 시돈이라는 지역입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시돈까지 112km 정도의 거리입니다. 모든 시냇물이 말라버려 물도 없는 상황에서 그 먼 곳까지 걸어가라는 것은 너무 힘든 명령입니다.

또한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이며 엣바알의 영토입니다. 아합에게 멸망을 선언하고 몸을 피해 그릿 시냇가로 간 엘리야에게 호랑이 굴인 시돈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큰 환경의 어려움입니다. 둘째, 사르밧 과부입니다. 구약시대의 과부는 가난의 상징이며 완벽한 궁핍이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12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중략) 그 후에는 죽으리라” 라고 말할 정도의 가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신앙의 삶이 환경에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삶에도 결코 환경이 걸림돌이 될 수 없으며 그 환경이 신앙의 삶을 더욱 성숙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보내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바로 하나님만이 공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삶이란 환경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엘리야가 가야 하는 지역이 시돈이라면 이가 갈리지만 그 이유 때문에 가지 않는 것은 신앙의 삶이 아닙니다.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필이면’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악한 대상을 받아들이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즉, 환경을 극복하는 신앙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온도계가 아닌 온도조절계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는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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