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별러왔던 서울시내 투어를 했다. 버스로 고궁을 비롯한 갈 만한 곳을 둘러보는 이벤트다. 20여곳의 관광지 가운데 희망지를 선택, 투어하면서 30분마다 버스를 탈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초가을 높은 하늘 탓인지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경복궁 초입 넓은 터의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꽉 차 숨이 막힐 정도였다. 외국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들 모두가 돈으로 보인다. 나의 속물근성 때문일까. 무리지어 다니는 중국인들의 큰 목소리가 그들 나라의 경제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국인들 가운데는 유독 노인이 많았고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가족 변천사의 일면을 여기서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고궁이나 고택, 옛 절터를 찾을 때면 건물 뒤편 후미진 곳을 돌아보는 습성이 있다. 경복궁의 색 바랜 단청, 나무틀의 요철 이음새에 눈을 주면서 세월의 풍상에 갈라터진 기둥을 만져 보면서 타임머신을 옛날 그 시절에 맞춰본다. 궁터를 오가는 옛 선인들의 발짝 소리, 벼슬아치들의 잔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단정한 옷맵시에 다소곳이 발걸음을 옮기는 궁인들의 모습도 그려본다.

안내 표지에 따라 궁성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노인 행렬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즐거운 나들이 모습을 보면서 말 많은 노인복지문제에 마음이 꽂혔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겨우 넘긴 나라에서 복지에 관한 긴긴 갑론을박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옛 왕들이 정사를 보던 궁 앞에서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얼핏 떠올랐다. 어릴 때의 생각도 났다. 양식이 떨어지면 이웃에 가서 됫박의 쌀이나 낱 연탄을 빌려오던 장면들이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우리 국민들은 가난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은둔적 미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의 가난을 나라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없고 빈부 격차의 틈새가 너무 벌어져 있다.

국민들 중에는 아직도 복지라고 하면 양로원, 장애인시설, 육아원 등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외에도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저소득층이 의외로 많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어려운 계층이 생계비와 의료급여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도움을 주는 선별복지 프로그램이다.

요즘처럼 복지라는 말이 회자된 때도 없었다. 65세 넘은 노인에게 사망할 때까지 매월 연금을 지급하고 5세 이하 아이에게 양육수당을 주고 심지어 대학등록금의 반을 지원해 주겠다는 별의별 복지 아이템이 남발한다.

스스로의 무능을 탓하면서도 애써 환경을 수용하는 보통사람들에게 복지헛바람을 집어넣은 장본인은 정치인들이다. 정권을 탐하는 정치인들이 마구 내 놓은 복지공약은 국민들을 깊은 수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들의 복지약속은 거의가 생산성이 없는 무상복지들이다. 주기만 할 뿐 회수를 못한다. 당사자인 노인들은 참고 있는데 일을 해도 안 해도 꼬박꼬박 세비를 챙기는 정치인들이 끼어들어 혼란을 만들고 있다.

고궁에서 만난 노인들의 느긋한 표정에서 나라가 베푼 배려에 감사함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65세만 넘으면 누구나 전국의 지하철, 고궁 등 문화재 시설 이용 때 무료혜택을 받는다. 병·의원도 큰 부담 없이 이용한다. 기본적인 노인복지의 틀은 이미 깔려 있는 셈이다. 복지에 욕심을 내면 한도 끝도 없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정치의 궁극적 가치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지만 교언영색으로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서는 안 된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듯이 허세를 부리는 정치인을 국민들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이 노인들에게 약속한 노인연금 공약 이행에 차질이 생겼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강한 의지는 있지만 재정문제로 벽에 부딪친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재정이 풍부하면 무슨 일이든 척척 해 나갈 수 있지만 나라 경영에도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을 수 있다. 임기 중 계속 노력하겠다고 하니 기다려 보자. 돈이 없으면 복지도 어렵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대통령이 사기를 쳤다고 몰아세우는 반대당의 행태를 보면서 정치가 복지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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