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요즘 거의 매일 아침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하는 내용 중 하나는 부모를 살해한 자식에 관한 것이다. 이런 뉴스를 대하면 효와 예절을 중시하던 대한민국은 어디갔는가 한숨부터 쉬게 된다. 효는 유교의 한 교리로 강조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습이지만 효는 기독교에서도 강조되어야 하는 중요한 율법이며 관습으로 이미 십계명의 명령에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계명을 크게 둘로 나눌 때 앞의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다.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으로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부모와의 관계를 먼저 명령하셨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이 계명은 철저히 지켜졌다.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지속되어야 하는 중요한 율법이었다. 구약시대의 무덤들은 이러한 관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가 효를 표현하기 위해 조상들의 무덤을 잘 꾸미고 돌보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조상의 무덤을 잘 돌보는 것은 의무화되어 있었다.

요셉은 야곱을 위해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묻힌 가나안 땅의 막벨라 동굴로 이집트에서부터 아버지의 뼈를 가져 와 묻었다(창 50:4~14). 모세는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갈 때 요셉의 소원대로 그의 뼈를 모아 가지고 간다(창 50:25, 출 13:19). 더구나 이스라엘에서는 한 사람의 삶의 결과는 매장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만약 적당한 매장의 수순을 밟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야김은 그의 악행으로 인해 왕의 묘지에 매장되는 대신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였다”(렘 22:19, 36:30). 

신구약 시대 전체 이스라엘은 석회석 바위산을 뚫어 굴을 만들고 그 안에 벤치를 마련한 후 시체를 안치하는 형태의 무덤을 사용했다. 무덤은 마치 집처럼 평안할 수 있도록 장식되었다. 무덤은 귀족용으로 한 사람만을 매장한 형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용으로 여러 시신을 눕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습은 성서에서 “○○와 함께 잠들다”라든가 “○○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드온은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으며” (삿 8:32)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되었다(삿 16:31). 주전 10~주전 7세기 이스라엘 왕국시대 예루살렘 주변에서 발견된 무덤은 여러 시신을 매장하기 위하여 연결된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며 각 방의 삼면은 시신을 놓아 둘 수 있도록 벤치를 깎아 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벤치 아래에 파여 있는 큰 구멍으로 자녀들은 일년 후 시신이 썩으면 무덤으로 돌아와 뼈를 모아 이 구멍에 저장해 두었다. 힌놈의 골짜기에서 발견된 25번 무덤의 시신 저장고에는 95구의 시신의 뼈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물론 다음 세대의 시신을 눕히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있지만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놓으리로다”(사26: 19) 같은 구절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메시아가 오는 그날 조상이 다시 살아 날 수 있도록 뼈를 모아 놓는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부모의 시신을 매장하고 죽음 이후의 일까지 보살피는 것이 공경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효는 분명 십계명의 하나로 기독인이 먼저 나서서 부모를 공경하는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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