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0:17~19)

밀레도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사람들을 보내어 장로님들을 청하여 권면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우고 교회를 돌보게 하였는데 이제 아시아를 떠나면서 고별설교를 합니다. 여기에 사도바울의 목회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목회가 무엇일까? 바울은 그 정의를 19절 후반부에서 “…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어떻게 섬겼을까요?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주님 섬기듯 섬겼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섬겼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는 섬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나 성도나 갈등이 어디에서 옵니까? 나를 섬겨주지 않는 데서 갈등이 옵니다. ‘누가 나를 섬겨주지 않나…’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섬김을 받으려 하지만 목회자는 한 사람만 섬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또한 목회자들도 섬김을 받으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봅니다.

요즈음 우리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섬김을 받고 살아갑니까, 저는 그리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성도들의 섬김을 참 많이 받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꼭 표현합니다. 성도들이 고맙고 감사하지요. 본문에서 바울은 섬기는데 누구를 섬겼으며 어떻게 섬겼는가를 고백합니다.

그는 주님을 섬기는데 겸손하게 눈물로 시험을 참으면서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곧 모든 겸손으로…”
바울의 목회는 모든 일에 겸손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겸손하지 못하면 좋은 것이 못 됩니다. 인간적인 지식과 방법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섬겼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요. 자기가 드러나면 겸손이 아니지요. 내 것을 주장하고 내 방법을 주장하면 부딪힙니다. 주님의 생각, 주님의 방법,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참된 겸손은 자기 포기요 종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많은 지식과 경험과 체험이 있었지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주님의 종으로 겸손하게 목회했다고 장로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눈물의 목회
바울은 고도의 지성인이었지만 뜨거운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한 것을 보여줍니다.
눈물이 언제 납니까? 머리로 이해하면 눈물이 안 나오지요. 가슴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눈물이 납니다. 바울의 눈물은 주님을 거부하는 인생들을 보면서 그 아픔에 못 이겨 나온 것이며 또한 자기 동족의 회심을 위한 그의 애절한 심정 표현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눈물은 감상적인 눈물이 아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열정의 눈물이었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시험을 참으면서 주를 섬김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참은 바울의 목회였습니다. 배고픔과 추위와 강도의 위험 등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시험은 유대인들의 간계로 인한 시험이었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금식하면서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방해하고,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참고 또 참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시험은 여러 가지이지만 사람을 통해서 오는 시험은 참 참기 힘들 때가 많지요. 저도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그때 조금만 내가 참을 걸 하는 후회를 많이 합니다. 조금 참지 못해서 사람을 잃고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됐지요.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말은 하고 찬양은 하지만 참지 못해서 상처주고 상처 받는 목회, 가슴 아픈 일들이 수없이 지나갑니다. 조금만 참고 내가 죽으면 되는데…. 바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봅니다.

유대인들에게 당한 시험을 참고 주님을 섬긴 것. 바울의 목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의 목회, 눈물의 목회, 시험을 참는 목회, 이것이 진정 참 목회요,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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