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 앞을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다. 6월 국회의 정파싸움으로 더욱 극명하게 정치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 나라에 정치가 존재하는지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참다못한 시민단체들이 정치권의 각성과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와 시민운동과 종합편성 방송매체에서 벌이는 새로운 한국 세우기 운동에 조금은 위안을 받는다. 성숙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은 필수다.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위한 감시와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의 노력도, 내국인과 외국인의 인권운동, 특별히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과 중국동포(조선족)등 이를 위한 시민운동도 꼭 있어야 한다. 이미 구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각종 시민운동이 있어왔고 이 운동은 올바른 정치와 복지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데 촉매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많은 시민운동 중 특별히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에 대한 이해와 정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반세기 동안 분단된 남북한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지만 이 차이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북한과 북한을 탈출한 자유이주민에 대한 주장은 차이가 크다.

남북한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던지 간에,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새터민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상점에 진열된 상품 가운데 용도를 모르는 것이 있고, 간판에 쓰인 문구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서양말과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매체의 내용을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 특히, 북한에서 경험하지 못한 경제생활을 새롭게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새터민들의 한국사회 정착과 관련하여 우리가 중시해야 할 점은, 남북한 사이의 차이가 한국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사고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의 차이는 삶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화적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한국사람 속에서 우열(愚劣, 우수함과 열등함)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남북한의 차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는 박력과 솔직함을 나타내고, 충청도 말씨는 양반의 여유 있음을 나타내지만, 북한과 새터민들이 많은 거주하는 연변의 말투는 바보스러움이나 모자람의 상징으로 희극화 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일본이나 미국 거주 동포와는 달리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을 은연중에 업신여기는 잘못된 풍조가 우리 사회에 있고, 새터민을 호기심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가 퍼져 있다. 한국 사람과 기업은 새터민을 한국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새터민들은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한국 사람과 다른 차이점을 질문 받고 답변을 요구당하며 때로는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새터민은 한국 사람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거나 우리사회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새터민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과는 결코 융합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우리 사회에서 한계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은 어려운 자를 위한 시민운동으로 널리 펼쳐가야 할 것이다. 특히 새터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이념이나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을 믿고 인간이 잠시 동안 진리의 길을 방해하고 지연시킬 수 있으나 진리의 절대적인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오직 진리에 속성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빨리 북한의 해빙의 변화로 인하여 언젠가는 8.15기념 민족 통일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꿈꾸며, 국민과 하나님을 위한 공정하고 겸손한 나눔의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띄워본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