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아카데미 영화상 주요 부문을 휩쓴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의 주인공 에릭 리델(Eric Liddel/1902~1945)에게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3월 중국기독교 역사탐방 차 칭타오(靑島)와 옌타이(烟臺)를 방문했을 때 그의 무덤 옆에 건립된 비석을 보았고, 그가 1924년 파리에서 개최된 올림픽 육상경기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면을 알게 되고부터였다.

파리 올림픽 당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은 육상경기 100m 결승전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 경기의 최고 기록 보유자가 영국의 육상선수 에릭 리델이어서 그가 결승전에서 우승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침 올림픽 육상 100m 경기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 주일이었기에 신실한 크리스천이던 에릭 리델은 결승경기 참가를 포기하기로 결심하였고 그 시간에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로 인해 그는 기권 처리가 되었고 조국의 국민들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수많은 전 세계 육상 애호가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파리올림픽은 그대로 싱겁게 끝나질 않았다. 자신의 주종목인 100m 달리기를 포기한 에릭 리델은 며칠 후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400m 달리기에 도전했다. 출발신호에 따라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던 그는 얼마 가지 못해 넘어지고 말았다. 온 관중의 “와!”하는 놀람과 동정의 함성이 스타디움을 꽉 채웠다. 그러나 그는 이 함성을 뒤로 하고 재빠르게 일어나 달리기를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단연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 순간 모든 관중이 기립한 채 “엘리 리델 만세! 엘리 리델 만세!”를 합창했고 경기장 전체가 진동하는 듯 했다. 이때의 그의 세계신기록은 그 후 16년간 깨지지 않았다. 이 우승 이후 그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의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그는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 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려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고 고백을 했다.

그 후 그는 세계 정상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선교사인 부친의 영향으로 1928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친과 함께 중국선교에 헌신한다. 그의 부친이 1941년 심천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교 당하자 그는 홀로 텐진(天津)에서 선교 사명을 계속하다가 1945년에 일본 패망을 목전에 두고 44세의 아까운 나이에 순교 하였다. 일본군은 올림픽 영웅을 처형하였지만 다행히도 그의 무덤 옆에 비석을 세워주어 크리스천 관광객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되새기게 해주고 있다.

필자는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하게 되었다. 그는 갈멜산 정상에서 바알의 선지자와 대결을 벌여 큰 승리를 얻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처단하는 기세등등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 직후 독이 오른 이세벨 왕비의 공갈에 겁을 먹고 광야 로뎀나무 그늘 밑에 누어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으로 호렙산에 이르러 다시 사명을 받고 사명을 수행했다. 필자는 거기서 “갈멜산 정상과 로뎀나무 그늘 밑은 멀지 않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우리 교단은 지난 일 년 간 전·현직 총무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우리 교단은 17년 전인 제89차 총회(1996년)에도 겪을 뻔 하였으나 이를 지혜롭게 해결한 경험이 있다. 당시 총회가 총무 교체주기여서 새 총무를 선출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신임 총무와 퇴임 총무는 서울신대 동기생이요 친구지간이어서 총무 인수인계가 순조롭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힘겨울 것이라고 측근들이 많은 염려를 했었다.

그런데 신임 총무는 로뎀나무 그늘에서 무기력해 있는 전임 총무의 허전함과 서글픔을 이해하고 시간을 기다리며 그가 심적으로 치유되기를 기다려 주었다. 신·구 총무의 인수인계는 9월 중순의 총회 이후 두 달이 지난 11월 중순에서야 이루어졌다. 그 다음 해인 1997년이 교단창립 90주년이었고 신임 총무가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90주년 행사를 치르느라 힘겨워 했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우리 교단이 겪고 있는 총무 교체의 진통에서 새로 당선된 총무가 갈멜산 정상에서 낙선한 전임 총무의 로뎀나무 그늘 밑 처지를 돌아보고 이해를 하며 기다려 주었으면, 그리고 전임 총무도 로뎀나무 그늘 밑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오늘 같은 혼미한 상태에 이르지는 않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느껴본다. 우리 성결가족 모두가 항상 ‘갈멜산 정상과 로뎀나무 그늘은 멀지 않다’는 교훈을 기억하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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