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표준새번역이 출간되어 여러 타 교단에서 그 성경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우리 교단도 총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표준새번역의 여러 문제점들을 매거하며 유인물로 만들어 정기지방회에서 사용 반대 상신을 위한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총회에 나가지도 못했고 총회에서는 소문대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현재 표준새번역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교단은 하나도 없고 우리 교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 교단들은 깊은 연구 없이 사용 결정을 했고, 우리 교단 역시 깊이 살피지 않고 섣불리 따라하였다가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린 총회 결의였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심판’을 ‘재판’으로 바꾸는 헌법 개정이 통과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심판할 수 있을 뿐 사람은 심판할 수 없기 때문에 재판으로 바꾸었다는 해명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우리 주의 종들도 마땅히 심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우리도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여쭈며 경건한 마음으로 ‘재판’이 아닌 ‘심판’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심판’은 ‘재판’이 담을 수 없는 깊고도 신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교회의 고유 용어입니다. ‘이단을 심판한다’는 말은 잘 어울리지만 ‘이단을 재판한다’는 말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타 교단들이 ‘재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우리 성결 교단만은 끝까지 ‘심판’이라는 그 귀한 용어를 지켜야 했었는데 아무래도 ‘남 따라하기’를 한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금번 총회에서 총회비를 경상비가 아닌 세례교인 수로 산정하자는 안이 나와 일 년간 연구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도 총회비를 떼먹으니까 어쩔 수 없이 제기 된 고육지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이 역시 ‘남 따라하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몇 가지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일단 총회비를 세례교인수로 산정하는 것은 핀트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내는 것이므로 돈에 의해 산정해야 하는데 사람 수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일조를 한 달에 십 만원밖에 못내는 신자가 있는 반면 기백(幾百) 만원 내지는 천만 원이나 헌금하는 신자도 있다는 점에서 세례 교인 수에 의한 총회비 징수는 결코 공정을 기할 수 없다는 면을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세례교인수로 총회비를 내면 성결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세례교인수를 부풀릴 수 있고, 또 부총회장이 출마하는 교회나 지방회에서도 더 많은 총대의 확보를 위해 세례교인수를 대폭 늘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총회비 인상은 물론 출마하시는 분의 몫일 거구요 ….

그런데 사실 작금의 ‘불의한 총회비’는 단순히 우리 목회자들의 성결성 부족 때문만은 아닙니다. 총회비가 총회 차원에서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 때문인 경우가 많고, 개 교회에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하여 부득이 총회비를 줄이는 경우도 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많은 부분들을 깊이 헤아리시어 우리 교단만의 독창적인 안을 상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남 따라하기’는 내 교단에 대한 자존심이나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큰 교단에 대한 사대사상(事大思想) 내지는 자기 교단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發露)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 따라하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어 서서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를 깊이 고민해보아야 하고 선도하는 교단이 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총회에 상정된 목회자 자녀 대물림(세습은 부적절한 용어) 방지법안도 더 깊이 기도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목회자 자녀가 교회를 맡는 것을 온 교인이 동의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면 그 법안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법안이 될 뿐이요, 아울러 또 하나의 ‘남 따라하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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