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회자다. 그것도 작은 교회 목회자다. 대도시 서울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정년 은퇴까지 10여년 정도 남은 목회자다.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한 지 28년이 되었다. 전도사 시절부터 하면 벌써 30년을 넘은 셈이다. 하기야 나는 전도사 시절에도 담임교역자로서 목회를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목회가 힘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원하는 목적도 못 이루었을까? 요즘 들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때론 후회도 해 본다. 때론 실망도 해 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쉴 때가 많다. 또 신학대 동기들의 목회와 비교하면 너무나 작고 부족해서, 등에 땀이 솟고,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이것은 분명히 질투와 시기의 마음일 것이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내가 무엇이 못나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을까? 참으로 많은 생각 속에서 매일 매일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3년을 맞았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를 다잡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성경을 더 많이 읽기로 했다. 1년이 12달이니, 한 달에 한 번씩, 12번 정독하기로 했다. 작정을 하고 시간만 나면 성경을 정독했다. 4월이 되어 3번은 읽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가능한 글자와 사건 사이에 묻혀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아는 사건이라고 건성으로 읽지 않고, 글 속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놀라운 의미들을 새기며 읽고 또 읽었다. 몇 해 전에 인기리에 한국의 성도들이 은혜를 주었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보면서 느꼈었다. 나도 그 성경 대목을 분명히 읽었을 텐데, 이렇게 소중한 말씀을 왜 놓쳤을까? 반성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었다.

그러다가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멍하게 은혜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윗의 이야기이다. 나는 평소에 다윗을 존경하며 살았다. 다윗을 그리워하며 목회해 왔다. 왜냐하면 나와 내 목회와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을 간다. 사무엘상 21장의 이야기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놉으로 도망을 간다. 그곳은 성소가 있는 곳이다. 다윗은 성소에 도착한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한다.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아히멜렉이 묻는다. 다윗은 거짓으로 대답한다. “사울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사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온 것이다. 또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지금 막 작별을 고하고 이곳으로 황급히 도망 온 신세이다. 사울에게 쫓기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 것이며, 친구와 헤어졌으니 얼마나 가슴이 쓰리고 아팠을 것인가! 그런 기막힌 상황을 함께 안고 달려왔으니, 얼마나 배고팠을까!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청한다.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대답한다.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내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이었다. 다윗은 그 떡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좌우를 둘러보더니 이내 무기를 찾는다.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아히멜렉이 대답한다.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대답한다.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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