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행정학 강의를 수강한 학생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곧 ‘신호등’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행정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신호등이라고 말하겠다.” 행정학 수업시간에 행정학을 소개하는 나의 행정학 강의 주제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신호등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중세 르네상스 이후 문예부흥, 종교개혁, 그리고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 산업사회가 대두되면서 나타난 문명의 이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대산업사회의 상징적인 도구인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동차가 생기면서 고속도로가 필요했고 시내에서는 신호등이 절실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교통경찰이 교통질서를 위해서 하루 종일 네거리에 서서 두 팔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정신없이 교통정리를 했다. 하지만 파도처럼 몰려드는 자동차가 저마다 먼저 가려고 하다 보니 교통경찰로서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교통경찰은 많은 운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이동하려는 운전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생겨 난 교통시스템이 신호등 체계인 것이다. 신호등이 생겨난 뒤에는 하루 종일 아무리 많은 자동차가 몰려온대도 피곤한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며, 정확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투명하게, 신속하게, 안전하게 교통질서를 잡아주며 운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모세가 교통경찰처럼 수많은 백성들의 문제를 혼자서 하루 종일 처리해도 처리하지 못하자 백성들은 불평불만으로 다툼을 일으킨다. 백성은 백성대로, 모세는 모세대로 기진맥진하는 모습을 본 장인 이드로가 “사랑하는 내 사위 모세여! 그대가 하는 일이 땀 흘리며 하루 종일 두 팔 들고 호루라기 부는 지친 교통경찰을 보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아프네. 자네 그렇게 계속하다간 자네 명대로 못살고 일찍 죽겠네. 내가 자네에게 조언 한가지 할 테니 듣게나. 백성 중에 유능한 자를 택하여 그들에게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재판하고 행정을 하도록 하게나”라고 말했다. 모세가 장인의 충고를 듣고 그대로 행하자 백성들은 신바람 나고 모세는 피곤치 않아서 120살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한국은 전 세계 200여개 국가 중에 12번째 잘 사는 나라로 자동차 5대 생산국이 되었으며 고속도로나 국도, 순환도로 등 모든 게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자동차도 좋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미국과 일본같이 명차는 아직 못 냈지만 그래도 도로나 자동차 성능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그런대로 부럽지 않게 즐기며 살 수 있어서 행복한 나라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떤가? 1970~80년대 성전건축과 교회의 급성장으로 양적성장이 폭발적이었으나 교회와 성도들의 행정수요를 충족시킬 신호등 설치는 생각조차 못하며, 안일하고 나태하게 착한 교통경찰로 교차로 네거리 교통질서를 지키려고 애쓰다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 교통경찰들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자동차 운전자들은 마음 아파하며 가슴아파하고 있지 않는가? 장로교단의 교통대란을 목도하였고, 감리교단의 교통사고를 구경하면서도 우리 성결교단만은 성결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는 오늘의 기성교단 교통사고로 구급차의 사이렌이 멈추지 않고 있어 주위사람들에게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인구 10만 명이면 소도시, 30만 명이면 중소도시, 50만 명이상이면 중형도시, 100만 명 이상이면 대도시에 속한다. 우리교단이 70~80만 이상이라고 자부한다면 이제는 사람이 움직이는 교통시스템이 아닌 기계가 작동하는 신호등 행정 시스템을 속히 도입하여 보다 효율적인 성결교단 행정이 펼쳐져야 한다. 네거리 교통행정을 신호등 체계로 속히 바꾸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자동차 운전도 지루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