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파리와 하루살이는 친구였다. 둘은 함께 만나 하루를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 해가 저물자 파리가 헤어지면서 말했다. “우리 내일 만나서 또 놀자. 잘 자. 내 꿈꿔.” 그 말을 들은 하루살이가 생각했다. “참 이상하다. 파리가 말한 내일이란 게 뭐지?”

그 이후 파리는 새로운 친구인 개미를 만났다. 파리와 개미는 만나서 재미있게 놀았다. 개미는 수준이 되는지 내일이 뭔지를 이해했고 그 다음날 또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놀던 그들에게 겨울이 찾아왔다. 그 때 개미가 말했다. “안녕, 잘 지내, 내년에 보자.” 파리가 생각했다. “내년이란 게 뭐지?” 우리는 내일도 알고 내년도 안다. 그런데 그 다음 영생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했다. 하지만 영생에 대한 기쁨과 기다림은 그리 간절하지 않은 것 같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우리에게 십자가의 감격과 부활의 흥분이 왜 그리 강력하지 못할까 고민해 보게 된다. 아마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설교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것도 무디게 반응하는 한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로 인식되면서 거의 무반응 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날 경제적으로 살 만하니까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적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연구 발표에 의하면 소득 1만 불이 넘으면 국가가 하나님을 버린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곧바로 레저나 문화 오락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넓은 호화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 영생을 위해 건너편 지하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려는 의지는 그리 잘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와 동족상잔 전쟁을 거치면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재림 신앙에 고조를 이루었다. 신약 서신서 대부분의 내용에는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예수님을 기다리며 소망하는 당부의 권면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갈망하기에는 너무나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있을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다리며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만일 우리가 죽음의 공포를 깊이 체험했다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깊은 슬픔을 경험했다면, 사는 날이 죽는 날보다 못하다는 뼈저린 탄식과 저주를 해 보았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으신 언약에 우리가 참여했기 때문에 언약의 체결자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리는 권리를 함께 누리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 분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의 시작이며 이제 다음은 우리의 부활이다. 생각해 보라! 신경통으로 쑤시던 다리가 아프지 않을 그 날, 죽음으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그 날, 일찍 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의 그 날, 더 이상 고통과 고난과 눈물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는가?

우리는 그 날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눈보다 더 희게 빛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이후의 주님처럼 영혼도 육체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부활의 바른 신앙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사도들의 당부처럼 모든 고난을 인내로 이길 수 있으며 불합리한 모든 것에 가슴 아파하지 않고 초연할 수 있을 것이며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과 아픔을 깊이 간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끔씩 내가 살아온 날의 테이프를 빠르게 돌려본다. 어머니 품에 있다가 이제는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그 언젠가는 나의 부모님처럼 늙을 것이며 그들이 나의 조부모님과 이별하였듯이 나도 나의 부모님과 긴 이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 길을 따르겠지만….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그 이별은 아주 잠깐이다. 그 날 아침, 모든 것이 끝났다. 예수님께서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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