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린아이 짓이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4개 계파, 즉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가 있어서 서로 시기하며, 분쟁을 일삼았다(고전 3:1~3).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 원인을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치중하였고 하나님의 사역자에 불과한 사람들을 추종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사도바울은 이런 고린도교인들을 ‘육신에 속한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다’고 했다. 아직 젖이나 먹는 신앙적 초보에 머물러 있고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요,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신령한 자가 아니라 미숙한 자들이요, 이들이 일삼고 있는 시기와 분쟁은 바로 ‘어린아이 짓’이다.

고린도교회 같은 한국교회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 고린도교회와 같다고 하면 지나친 말인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에 치중하고 하나님의 머슴에 불과한 사람들을 추종하며,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 한국교회와 일부 지도자들의 행동을 ‘어린아이 짓’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소위 ‘정치’라는 이름으로 다투고 분열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행동은 분명 ‘어린아이 짓’임이 분명하다. 어찌하랴? 시기와 분쟁과 다툼, 이것은 한국교회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렸다.

누가 지하철에서 싸우니까 어떤 사람이 호통을 치며 “여기가 교회인줄 아느냐”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한국교회는 싸우는 교회다. 그러니 전도가 될 리가 없다. 한국교회는 다툼으로 인하여 수없이 분열되고 수백 개의 교파가 난립됐다.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이뤄내야 하는 ‘한기총’이 갈라져 ‘한교연’이 생겼다. 연합하자고 모여서 또 싸운다. 차라리 이런 연합체라면 해체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돕는 것이다.

다툼과 분열이 없는 교단이 몇이나 될까? 총회마다 학연, 지연으로 갈라져 싸운다. 이런 철없는 어린아이 짓들 때문에 주의 몸 된 교회가 찢겨지고 밟혀지고 있다. 가슴을 치며 묻자. ‘빛인 교회가 왜 세상의 공공의 적이 되었는가?’ 제발 어린아이 짓과 같은 편 가르기 좀 하지 말자. 성숙한 지도자라면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하나 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시기와 분쟁의 악한 정치
한국교회를 다툼과 분열로 얼룩지게 한 배후에는 소위 ‘정치’라는 괴물이 있다. 한국교회의 정치화(政治化)가 그 도를 넘고 있다. 교회 정치는 필요악이다. 혹 선한 정치도 있겠지만 거의 나쁜 정치요, 악한 정치다. 교회는 정치단체가 아니거늘 교회 안에 정치가 활개를 친다. 정치가 고린도교회처럼 사람의 일에 치중하고 사람을 추종하며,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복음을 맡은 목사, 장로들이 정치를 좋아한다면 제대로 된 사람일까?

안 믿는 사람 앞에서 복음 한번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면서 회의 때면 큰소리치는 목사, 장로들이 한 둘인가?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커피점이나 식당에 모여 수군수군하고 정적(政敵)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다. 지방회나 총회에 사건이라도 터지면 군침이 돌고 검은 돈 주고받으니 그보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랴? 그 짓이 피로 산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요, 그 검은 돈이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독인 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본래 정치 생리와 바른 신앙과는 그 속성이 다르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 성취를 위해서 거짓말 하고 파당 짓고 모함하고 권모술수를 쓰고 돈 거래를 한다. 정치는 자기 살고 남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나쁜 정치는 적전분열 행위로 사단을 이롭게 한다. 복음전선에서 동역자를 적으로 보게 한다. 이에 반해 바른 신앙은 스스로 낮아지고 남을 높여주며 섬기는 것이다.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이롭게 한다. 사랑으로 허물을 덮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화평을 추구하고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와 신앙이 어찌 결합 될 수 있는가? 결코 정치와 신앙은 결합될 수 없다. 정치와 신앙이 결탁되면 큰일 난다. 이게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무서운 것이다. 겉은 거룩한데 속은 정치적 욕망이 이글거린다. 소위 말하는 정치 목사, 정치 장로들이 정치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악한 일을 서슴지 않는가? 이런 배후에 사탄의 계략이 숨어 있다. 정치를 명분으로 악한 일을 자행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회개할 줄도 모른다. 교인들의 피눈물이 섞인 돈을 선거 자금으로 쓰면서도 죄책감이 없다. 

섬기며 낮아지는 신앙 자세
예수님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들 역시 정치에 오염됐다. 유대교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종교집단이요, 정치집단으로 전락됐다. 정치집단으로 전락된 유대교와 로마 정치세력의 야합에 의해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집단은 무슨 짓이든지 다 한다. 폭행, 공갈 갈취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단 사이비 집단에서 무서운 집단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 무서운 정치가 한국교회를 집어 삼키려고 한다.

사도행전 3장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사도들에 의해 일어났다. 이때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비본질적인 일에 몰두했다. 솔직히 저들은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진짜 부활하신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났는지 관심 없다. 오로지 저들의 관심은 무슨 권세로, 누구 허락을 받고 사도들이 이 일을 행했느냐는 것이다. 그게 신앙의 본질인가?

오늘의 교회 역시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고 비본질적인 일에 빠져 있다. 교회의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비본질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총회장 되고 총무 되고 항존위원 되는 것이 본질인가? 거기에 목맬 일인가? 그게 바울이 진리이신 예수 만나고 똥오줌으로 여겼던 것들이 아닌가? 예수 한 분으로 족하고 목사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수는 없는지.

요즘 총회나 교회에서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나쁜 정치의 부산물이다. 부끄러운 어린 아이 짓이다. 성경은 말한다. ‘장차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다. 천사도 판단한다. 이 세상도 마지막 날에 성도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그런 세상에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을 판단 받겠다고 가져가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비본질에 몰두하는 교회와 신앙인들
성경은 교회 안의 일은 교회 안에서 해결하라고 한다. 교회 안에 문제를 해결할 만한 사람이 그리도 없느냐고 책망한다. 교회 안에서 해결이 안 되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아주라고 한다. 그게 안 되니 한국교회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법은 마지막에 가는 길이요, 최후의 선택이다. 법 이전에 상식과 양심과 윤리, 그리고 진리의 말씀이 있다. 매사를 세상 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성숙치 못한 어린아이 짓이다. 신앙 윤리가 살아 있어서 법 없이도 아무 지장 없이 운영되는 그런 교회, 그런 총회가 돼야 한다.

한국교회가 점점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가 없고 능력도 없이 그냥 종교생활을 할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신앙을 잃어버렸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무신전신’란 말처럼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산다. 종교적인 무늬만 있고 형식만 갖춘 외식주의자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을 책망하셨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보다 사람을 훨씬 더 의식한다.

이 땅에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기도하자. 목사, 장로들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마음이 되게 기도하자.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가 아닌가? 예수님은 지상에 세워질 교회와 지도자들을 중보하시며 “아버지여, 우리와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될 때 선교적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다. 주님의 이 기도가 초대교회와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자.
성결교회는 ‘성결’을 지상과제로 삼는 성숙한 교단이다. 작금의 성결교회 총회 돌아가는 것을 보며, 주님은 아파하실 것이다. 나쁜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다툼과 분쟁, 그리고 무질서가 팽배하다. 지연, 학연으로 갈라져 선후배, 친구가 정적이 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다. 성결의 본질을 상실하고 비본질적인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어린아이 짓이다. 이제 우리 모두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자가 되어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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