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코미디 개그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김미화 씨가 언젠가 ‘아름다운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한 특강에서 생을 마감한 다음 자신의 묘비내용을 밝혔는데 일곱 자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자빠지다’는 누워 있다는 뜻이며, 동사인 ‘자빠졌네’는 죽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죽기까지 남을 웃기다가 죽겠다는 각오이며 자신의 생애에 충실하게 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행복이란 불평이나 불만이 없는 만족한 상태이다. 자신과 남을 비교해서는 행복해 질 수가 없다. 현재 자신의 처지에 자족해야하며 자신의 일이 천직임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벌거벗은 존재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로운 위치에 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빈손으로 발가벗고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는 어처구니없이 웃기고 자빠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2차 대전의 주범 히틀러는 유럽을 통일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에 불탔다. 그러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세는 바뀌었고, 1945년 4월 25일 그는 4.5평 되는 총리공관지하실에서 포위된 채 5일 후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부하들은 밖의 잔디밭에 구덩이를 파고 옮긴 뒤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석유를 부어 완전히 소각시켜 버렸다.

그런데 역사는 그와 대동소이한 일들로 엮어지고 있다는 아픔이다. 왜 그럴까? 한국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일들도 많다. 그러나 얼마 전 까지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던 일본의 잔재로 한국이 흔들리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40여명에 이르고 있다. 거기에 돈 많은 사람들의 자살율도 2011년에 38.9%(293건) 늘어났다고 한다. 웃기고 자빠졌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웃기고 자빠질 것인가’. 성경의 인물 중 아담과 하와는 긍정에서 부정으로 끝났지만 요셉처럼 계속 긍정의 길을 걷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기중심으로 살다가 하나님 중심으로 산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지고 살면 언제든 멋있는 생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약에서도 공통으로 된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 될 것이다.

왜 우리는 부정적이며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까? 생명을 왜 경시할까? 많은 이유 중에서도 경제 성장이 주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낙오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닌 절대자의 것이며 가정과 이웃이 연결된 것을 알고 화평을 긍정적으로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성경에서 ‘셋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4:20)’고 말한다. 에노스란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추구도, 진리와 사랑의 추구도, 절제와 극기의 구현도, 모두가 죽음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는 자만이 웃기고 자빠질 수 있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진을 전시한 48세의 고 김영갑 씨는 말했다. ‘나는 죽음을 매일 대하고 있다.…내 몸은 통나무처럼 굳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다.…죽음을 대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사람이 비로소 보인다. 평화는 외로움에서 온다.…명상을 즐기는 삶은 지극히 평온하다. 그래서 이 평온을 안겨 준 루게릭병에게도 감사한다(2006.5.25 소천).

우리는 ‘닉 부이치치의 허그’를 알 것이다. 목사의 아들로 팔다리가 없는 장애자로 태어나 15세 전에 3번이나 자살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결국은 심심풀이로 성경을 읽다가 시편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는 말씀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선사하고 있다. 정말 멋지게 웃기다가 자빠질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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