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9)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큰 갑부가 되었던 알프레드 노벨은 말년에 다이너마이트가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번 돈을 인류 복지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으로 주라며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했는데 이것이 노벨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벨상에도 어두운 구석이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노벨 평화상은 기준이 모호해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노벨 평화상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평화상’이 있습니다. 하나님 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마태복음 5장 9절에 나와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성경에서는 화평을 아주 강조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화평, 평화, 평안이라는 말 모두가 같은 뜻입니다. 이 말은 성경 전체에 고루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약 400회 가량 등장하면서 화평과 평화가 우리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하나님이나 다툼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평화가 없는 세상에 참된 평화를 심어주기 원하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기로 작정하십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이렇게 찬송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평화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참된 평화와 화평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도 화평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로로 뻗은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의미이고, 가로로 뻗은 나무는 인간과 인간, 나와 너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그 외아들이신 예수님은 화평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과 그 외아들만 화평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이 이 화평을 위해 기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상관없이 부모를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반드시 아버지인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아버지를 꼭 빼닮아서 세상의 평강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인 나를 닮으려면 나처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닮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가 없는 이 세상, 가정과 교회 안에서, 이웃과 주변 사람들 속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예수님이 피 값으로 치러 사신 평화를 단순히 누리는 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가 나서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만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