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초청받은 교회에서 전할 설교원고 작성을 마치고 호기심으로 AI에 설교제목과 성경본문을 입력하고 원고를 기다렸다. 1분도 되지 않아 입력한 대로 제목을 중심으로 한 원고와 본문을 입력한 원고 2편이 나왔다. 참 신기했다. 나는 한 주간 동안 밤낮으로 생각하며 작성한 원고를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작성하다니….

 내용을 분석하며 내가 작성한 원고와 비교하여 보았다. 내가 작성한 원고보다 논리적이고, 언어도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통찰력도 있다. 나보다 잘 썼다.(?) 앞으로 자주 편하게 사용할 유혹을 받는다. 글쎄, 설교준비에 시간을 아끼고 편하게 작성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릴 수 있지만, 나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배제하는 유혹은 아닐까?

 사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많은 책을 읽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주제에 맞추어 논리적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습관에 익숙한 필자이지만, 앞으로는 많은 자료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마음이 끌린다.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실용적 생각도 하게 된다. 

 이전에 대형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어느 분들은 설교원고를 작성하여주는 비서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여부를 논하기 전에 설교에 대한 과중한 부담을 벗어나고,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말씀을 전하여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설교원고 작성을 위한 비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자긍심과 거룩한 말씀을 대언한다는 긍지를 갖고 밤잠과 새벽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심하며 기도하면서 원고를 작성하는 설교자들은 과연 AI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설교원고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은혜를 사모하며 대면 또는 비대면 예배를 보는 이들이 스스로 관심이 있는 주제와 성경말씀을 AI에 입력하여 설교원고를 받아 신앙공동체 회원들에게 나눈다면 설교자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목회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목회자와 교회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영성이다. 목회자의 그리스도의 영성,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영성이다. 

 아무리 좋은 설교원고가 있어도 영성이 묻어나지 않는 원고는 글로 쓴 원고일 뿐이다. 깊은 영성과 지성과 좋은 인성을 지닌 설교자가 AI가 작성한 원고의 도움을 받아 말씀으로 전한다면 그 원고는 독자가 읽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설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다. 화려한 언변이나 달변의 문제가 아니라 전하는 말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전달자)가 누구냐에 관심을 보이는 세상이다. 

 그리스도의 영성이 고갈되는 시대이다. 설교자의 영성을 흠모하는 시대이다. 필자도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자유롭게 다양한 교파와 교단의 여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는다. 그리고 40여 년 간 설교를 하였고, 지금도 설교 하는 설교자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한다. 준비여부, 어휘선택, 영감의 흐름, 회중과의 소통 등… 직업병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더욱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 은혜의 말씀, 위로와 평안의 말씀을 잘 전하였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른 이들이 의외로 많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이들이 많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설교자의 말씀을 갈급해 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이들이 원하는 설교자는 AI가 작성한 원고를 대독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시대를 통찰하며 나의 삶에 정곡을 찌르며 하나님의 생각으로 적용하는 생활을 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영성이 있는 설교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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