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기준으로 보면
특정 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총선이 코앞이다. 어느 선거든 그렇지만 이번 선거는 유별나게 경쟁이 심하다. 윤석열 정부의 명운 그리고 주요 정치인들의 인생이 걸려 있다. 그저 단순히 정치 인생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 전부와 가정과 가문의 흥망이 걸려 있기도 하다. 그만큼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한 표를 행사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구조로 작동한다. 선거라는 장치가 그 중심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고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관심을 먹고 산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 국가나 사회에서 국민(시민, 구민 등)의 주권이 약해진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퇴행한다. 퇴행이 심해지면 주권이 국민에서 권력의 장치와 구조를 교활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공적인 권력을 소수의 특정 집단이 차지한다. 독재적 상황이다. 

선거를 통해서 보수 집단이 집권할 수도 있고 진보 집단이 집권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실용 정치를 더 강조하는 집단 또는 사상과 이념을 더 강조하는 집단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괜찮다. 인류의 역사 발전에는 보수와 진보, 실리와 명분이 다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느냐다. 보수나 진보 그 어느 것도 한쪽에 과도하게 힘이 실리면 반드시 독재 쪽으로 간다. 민주주의의 힘이 약해지며 독재의 상황으로 빠지는 것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 책임이 크다.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국가와 사회의 일원이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문에 그리스도인의 ‘이중 국적론’이 아주 명백하다. 이번 선거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판단하고 한 표를 행사하느냐가 참 중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 그 다음에 따라온다. 내가 사는 지역구에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 비례대표를 뽑는 일에서 어느 집단을 선택하느냐는 문제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어느 당이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느 후보, 어느 당을 이미 결정했을 것이다. 뭐 그런 분들은 그렇게 투표하면 되겠다. 그러나 하나 말씀드리자면, 기독교 신앙의 기준으로 보면 언제까지나 어느 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경을 최고의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 기준에 따라 어떤 때는 이 당을 또 어떤 때는 저 당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의 가치가 중심이어야 한다.

선거철의 기도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당선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후보자 중에서 어느 교회에 등록된 사람을 찍으라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런 뜻이 아니다. 어느 후보가 교회에 소속돼 있다고 무조건 찍으면 안 된다. 

선거를 위해서 선거구로 주소지를 옮기고 그 지역의 큰 교회에 등록하는 후보가 많다. 이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회는 다니면서 삶이 전혀 신앙인답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선거 때마다 종교를 넘나들며 소속을 옮기는 후보 또 여러 종교에 동시에 등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 신앙을 갖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후보의 교회 등록 여부가 판단의 중심 기준이 아니다. 후보의 정책, 살아온 이력, 예상되는 정치 활동 등을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선택해야 한다. 더 세심하게 말하면 후보의 정책과 삶과 정치적 활동 등이 성경의 가치관에 비추어 얼마나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번 4·10총선에서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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