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 교수의 설교 톡톡

“목사님, 성경만 전하세요!” 어떤 설교자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자신이 성경의 말씀을 전했다고 믿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여린 설교자라면 이런 말을 듣고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나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져 두문불출할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강한 설교자라면 이런 말을 하는 이를 붙들고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조목조목 따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많은 설교자들이 교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눈을 뜨고 있든지 감고 있든지 상관없이 딱딱하고 지루하더라도 한 절 한 절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는 절별주해 설교 방식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분명 절별주해설 교는 ‘안전한’ 설교 방식이다. 곁길로 샐 일도 적고, 설교하고 나서 ‘말씀만 전하지 않는다’ 혹은 ‘성경대로 설교하지 않는다’는 불평을 들을 일도 적으며 혹 그런 말을 듣더라도 변명할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설교를 하면서 혹은 그런 설교를 들으면서 답답함을 느낀 분들도 많을 것이다.
설교자 입장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정보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유효하다 느끼면서도 성경을 묵상하며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감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답답할 수 있다. 청중의 입장에서는 들으려고 애를 써야 겨우 얼마간 건져갈 수 있고 경청해서 듣더라도 무언가 많이 배웠다는 느낌은 있는데 딱히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답답할 수 있다.
간혹 절별 설교를 하더라도 본문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뛰어난 전달력을 가진 설교자들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설교자들은 안전하게 성경을 설교 하기 위해 택한 절별주해설교의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면 절별 설교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문제는 설교의 형식보다 설교의 초점이다. 절별주해 설교가 분명히 성경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본문을 읽을 때 경험 하는 역동성을 경험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래서 요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해돈 로빈슨이 말한 것처럼 이런 설교는 산탄(shot gun) 을 날리는 설교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성경을 조각조각 찢어서 던져 놓은 후 한 조각씩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누구라도 이런 방식의 설교를 듣고 핵심적인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청중들은 설교가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 는다. 심지어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니 더 성경이 어려워졌 다는 말도 듣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초점(focus)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신앙에 관한 정보들을 이름표 하나 없이 마구잡이로 모아놓은 창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점을 중심으로 창조로부터 타락, 구속, 회복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적인 흐름 속에 촘촘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사람이 만든 작품도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초점이 있듯이 성경도 초점이 있다. 성경의 전체적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각 본문들도 초점이 있다. 이것을 해돈 로빈슨은 중심사상(central idea) 이라고 하고 토마스 롱은 본문의 초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설교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은 본문의 중심사상 혹은 본문의 초점을 설교의 중심사상, 설교의 초점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런 설교라야 산탄이 아닌 명중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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