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들이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명동촌에 있는 명동교회는 1909년에 여덟칸 집을 사서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항일민족독립운동과 민족교육 그리고 북간도 신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규암 김약연 목사님과 성도들에 의해 1916년에 세워졌다.

이 예배당은 연변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 건물 중 하나로써 1993년 4월 용정시가 명동촌을 관광지로 삼은 후 용정시 인민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하였고 지금은 명동역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예배당에서 30여 미터 거리에 시인 윤동주의 생가와 명동소학교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ㄷ자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큰 길에서 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김약연 목사 기념비 옆에 아담한 한옥 예배당이 있는데, 예배당 건물 입구 오른쪽 추녀 옆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아 놓았는데  전면에서 보면 마치 용마루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교회 옆에 살던 소년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헤다가 이 십자가 끝에 걸린 해거름 햇살을 늘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햇살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의 힘겨운 어깨에서 조국의 가녀린 운명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사순절에 윤동주의 ‘십자가’를 생각한다. 2천 년 전이나, 윤동주의 시대에나, 오늘에나 십자가는 수치를 수난으로 이겨내는 힘이었다. 윤동주의 삶의 구석구석에는 바로 그 십자가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고, 그의 문학은 십자가 곧 수난과 부활의 신앙이 사유의 기저에 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 한국 사회의 교회를 향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엄동의 한파처럼 매서운 바람이 교회를 휘감고 있는데, 교회와 신자는 홑겹의 신앙마저 벗어버려 ‘다움’을 잃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본래 십자가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오늘을 견뎌내는 힘을 맘몬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다. 오직 십자가 그늘에서 쉴 곳을 찾으며, 그 능력을 힘입어 한없이 견디고 낮은 자리에서 돋는 새 봄의 풀처럼 세상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윤동주가 노래한 것처럼 “괴로웠던 사나이”라 해도 그 괴로움을 ‘행복’이라고 역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는 각오를 다져야하지 않겠는가?

영광의 십자가가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가 우리를 대속한 십자가다. 민족과 함께했던 윤동주의 십자가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누군가를 위한’ 십자가가 짐으로 지워져 있다. 

사순절을 지내며 생각하는 이 십자가, 모두가 영광을 좇는다 해도 우리는 이 십자가를 자랑하며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케노시스의 길로 가야함을 조용히 묵상해 본다. 저만치서 십자가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린다. “이 표식으로 승리하라.”(In hoc signo vinces). 콘스탄티누스의 승리는 지난한고난의 행군 끝에 받은 선물이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우리, 우리는 모두 십자가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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