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수기 7장(12~88)을 읽으며 (앞의 레위기는 더욱 그랬었지만) 그 지루함에 지쳤다. 일곱 절에 걸쳐서 한 족장이 드린 예물을 종류별로 상세하게 기록하고서, 그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철자하나 틀리지 않고 나머지 열한 족장이 드리는 예물목록이 반복된다. 그냥 나머지 족장들도 하루에 한 족장씩 차례대로 똑같은 예물을 드렸다고 한 절로 기록할 수 있는 내용을 7  ×11절에 걸쳐 기록하여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 “대체 이런 지루한 내용이 우리에게 무슨 영적 고양이나, 하다못해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유익한 지식이라도 제공한다는 말인가”라고 묻는 이는 인천 어느 지방회의 어느 명예장로이시다. 이 장로님이 주보에 쓴 글을 애오개가 슬쩍 인용했다. 그리고 본인도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우리가 신앙생활 중에 자주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지루함, 침체에 대하여 깊이 묵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의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였다.

▨… 그 고백이 어쩌면 모든 성결인 장로님들의 믿음의 전형이 아닐까 싶어 소개한다. “그때의 히브리 사람들이 그런 지루함을 통해 기다림을 배우고 가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임재하심에 감동하여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우리 신앙생활 중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지루함 가운데서도 때때로 허락하시는 그분의 감동, 임재를 기다리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명예 장로님의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성결인들은 몇 분이나 계실까, 아니 지도하시겠다고 팔을 걷어붙일 분은 행여 없으실까.

▨… 예수님의 수제자이지만 우리에게 때로 덤벙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베드로는 그 신앙생활의 나아감이 대제사장의 집 뜰 가운데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닭이 울기까지 자기 안에 갇혀 있었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완전히 실천되고 실현되는 구원의 세계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고 추구하셨지만 그분이 돌이켜 베드로를 보기 전까지는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의 현존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 예수께서는 가야바의 법정에서 또 빌라도의 법정에서 계속 침묵하셨다.(마태 27장)하나님의 아들의 침묵은 영적인 침체, 지루함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현존을 알리는 선포였다. 베드로의 심한 통곡(누가 22장)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베드로의 눈물은 하나님의 아들의 현존을 체험한 감격의 포효였다. 이 포효가 사순절의 성결인들에게 바른 신앙을 세우는 계기가 되도록 기도하자.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