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먼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바른편 눈은 완전히 덮였고 왼쪽 눈도 반 이상 실눈이 되어 있었다. 먹이가 그릇에 가득하지 않으면 쪼아먹지를 못하고, 다니다가 담장에라도 부딪히면 헤매다가 돌아 나오곤 하니, 모두들 저래가지고는 새끼를 기를 수 없다고 하였다. 얼마 후 살펴보니,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뜰 주변을 떠나지 않는데 병아리들은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 어미를 보면 절반도 제대로 못 기르는데 유독 이 닭만은 온 둥지를 온전히 길러내니 어쩐 일인가?”(이익, 닭 이야기·한글, 조창래)

▨… “나는 눈먼 암탉의 병아리 기르기를 지켜보면서 사람 양육하는 방도를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이익은 눈먼 암탉의 병아리 기르기의 방도를 ①병아리의 먹이를 찾기 위해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 빠지는 애씀을 마다하지 않고 ②병아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싸움 곧 자기희생에서 찾았음을 밝혔다. “저 눈먼 닭은 지혜가 있어 그리한 것은 아니겠으나 방법이 적중하여 양육에 만전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학(西學)에도 학문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이익은 천주교의 천당지옥설, 야소부활설에 대해서는 황탄한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천문·지리학과 천주교서 등 한역 서학서를 널리 열람하면서 세계관, 역사의식을 확대 심화시켰다.(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 학문적 관심과 역사의식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막10:45)고 밝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이 땅의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것 아닐까. 상상이 지나쳐 이익의 실사구시, 실학파적 개혁에 너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아니냐는 꾸중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 조선왕조의 정치, 문화를 개혁하려던 이익의 꿈은 신유사옥 때에 후학들이 옥사하거나 유배당함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섬김의 십자가’란 신학적 이해는 이 땅에서는 아직 변죽조차 울리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남인과 천주교를 멸절하기 위한 숙청이 감행되었고 정치, 경제, 사회의 개혁선구자들인 실학파의 후학들도 서리를 맞았다. 눈먼 암탉의 병아리 기르기가 막다른 골목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섬김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는 의지가 동방의 등불(타고르)처럼 빛나는 것이었음에도 조선왕조의 지도자들은 기독교의 정치, 문화,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간과했다. 그 결과 이 땅은 기독교에서 시작되는 정치, 종교, 사회의 변혁에 프랑스처럼 앞장서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뒤늦게사 합류하는 우를 범했다. 이 사실을 우리 성결인들이 직시할 때 교회가 사회를 이끄는 변혁이, 프로테스탄트다움이 살아나지 않을 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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