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과 즐거운 불편
순교자의 얼과 혼 살아있는 영성길

서원대 김병희 교수의 가이드북
“문준경 전도사 순교스토리 감동”
11개 교회 개척한 증도 등 소개
걸어도 되고 ‘두 바퀴’도 좋은 곳
다양한 방식으로 느린 여행 즐겨

전남 목포시 신안군 순례길을 안내하는 책『12사도와 떠나는 섬티아고 순례길(김병희 저) 출간 소식이 들려와 반갑다. 싸목싸목 돌아보는 길 위에 예수님 열두 제자가 순례자를 기다리는 곳, ‘순례자의 섬’이라 불리는 기점·소악도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길은 문준경 전도사의 얼과 혼이 살아있는 길이다. 섬마을 복음 전파로 한해 고무신 9켤레가 닳았다는 그는 증도에서만 11개 교회를 개척했다. 섬 복음화율이 90%에 달한 이유다. 그래서 교단 내 여러 목회자, 성도들은 이미 문준경순교기념관(관장 오성택 목사)을 필수 코스로 신안군을 방문한 바 있다. 지난해 제117년 차 총회 임원회 첫 공식 행보 역시 순교 영성을 배우는 신안군 순례길이었다. 저자 청주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김병희 교수는 이곳을 ‘누구나 찾아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순례길, 신앙이 없어도 영성을 느낄 수 있는 길’로 소개한다. 여행 가이드북은 아니다. 순례길 위에 독특하게 지어진 기도 공간마다 알맞은 성경 말씀을 고르고 사도의 이야기를 풀어낸 신앙의 지침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다양한 순교성지가 있지만 문준경 전도사님 스토리가 감동을 주었다”라며 집필 배경을 밝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정신의 역사’ 궤적을 찾아가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편의시설이 부족해 불편하더라도 일부러 두 발로 천천히 걸으며 즐길 것을 권했다.

“물때 맞춰 ‘쉬엄쉬엄’ 가다 보면 때로 잠시 ‘섬(stop)’이 되는 곳, 순교자의 영성이 흐르는 외딴길에서 이제 막 시작된 한 해를 위한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기를 바란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 앞바다에는 낮은 언덕과 야산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이 갯벌에 박혀 있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단 크고 작은 섬 다섯 개 위에 자그마한 기도 공간 12곳을 지었다(본지 1345호 4면 참조). 기도 처소가 있는 섬과 섬을 이으니 12km 순례길이다. 매일 두 번씩 바다가 갈라져 섬이 연결될 때마다 길이 생긴다. 즐거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길을 걷는다. 그래서 이곳을 ‘산티아고’ 대신 ‘섬티아고’라 부른다.

신안군은 2017년 ‘가고 싶은 섬’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2020년 12사도 건축미술 작품 설치를 모두 마쳤다. 2021년 숲속 순례길과 해안 순례길을 조성했고, 2022년 갤러리 공방 등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자동차 없는 도보전용 순례길과 공유자전거 교통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쉼과 삶의 재충전을 위한 자연 친화적 공간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섬티아고 순례길’은 순례자만 걷는 길이 아니다. 홀로 걷는 여행자, 두 바퀴로 섬을 누비는 자전거족, 스몰 웨딩을 치르는 연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느린 여행을 즐긴다. 맨드라미로 뒤덮인 보라빛 섬, 모든 지붕 색이 새빨간 섬, 코발트색 바다가 이국적으로 어울려 아름다운 사진으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책 한 권 배낭에 넣고 ‘섬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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