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빙’으로 교회와 목회자가 건강하고 행복하여 지역사회까지 자랑이 되기도 하고, 교회와 목회자가 상처를 입고 심지어 분열되고 심한 분쟁으로 사회의 부끄럼이 되기도 한다. 청빙으로 행복하고 더 건강해지는 교회는 어떤 요인일까?

1) 기준과 가치
청빙 받아보니 건강한 교회와 목회는 당회 또는 교회의 리더 그룹의 교회와 사역에 대한 기준과 가치의 이해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목회자도 순교를 각오하고 목양일념 하지만, 상대도 순교를 각오한 감정으로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니 서로의 불행을 낳게 된다. 교회와 목회자의 외형과 조건이 기준과 가치가 되지 말아야 한다.

2) 청빙과 선발
‘목사청빙’을 검색하면 목사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채용조건>이란 제목을 사용하는 교회도 있다. 교회가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아프다. 

<채용조건>이 학력, 경력, 자격 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세상 기업과 똑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밀실 청빙이 일어나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형성된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목회는 어렵다.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밀실 청빙에서 투명 청빙으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청빙은 하나님 앞에서 공정하게, 기회를 공평하게, 무엇보다 투명하게 해야 한다. 적어도 교회가 사회로부터 걱정거리 하나는 덜게 될 것이다.

3) 행복한 목회여야 한다
목회는 주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목회자는 행복하고 기뻐야 한다. 목회자가 쓰러지고 교회에 갈등과 분란이 조성되고 이단이 틈타면 이는 목회가 아니다. 이럴 때 순교라는 말을 쓰면 언어도단이다. 모두가 불행하고 피해자가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이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럴 때 청빙을 결정했다. 인위적인 방법이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청빙될 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교회도 목회자도 서로 알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기에 청빙의 허수를 제거할 수 있다. 여기서 외형적 조건이 청빙 기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놓치지 않게 된다. 청빙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 교회와 목회자는 순종해야 한다.

부임 후 목회
조화를 부탁한다. 구성원의 개성은은 다르지만 배타적이지 않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무지개를 띄울 수 있는 곳이 교회다. 상처가 있는 교회는 이벤트나 교제보다 예배에 집중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적 회복에 우선하는 목회여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 그분만을 그분 되게 하는 구별, 낮아짐, 봉헌, 몸짓, 마음, 정신으로 표현하는 예배여야 한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모든 나라와 민족과 언어로 드리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공동체는 공감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질서는 중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섬기는 것에서 건강한 교회로 세워진다. 그러기 위해 모든 지체에 마음을 열고 공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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