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바쁜 은퇴 후의 삶

임종렬 목사의 광정교회 34년 간 목회사역은 평생 시골 한 교회만 섬긴 것으로 특이하다. 

한번은 춘천 모교회의 청빙을 받고 주일에 사표 내고 월일 오전에 이삿짐을 마당에 쌓아 놓고 왔더니, 성도들이 와서 이삿짐을 모두 풀어 방에 그대로 정돈하고 있었다. 가지 말라는 성도들의 뜻에 감격하여 그는 함께 눈물로 기도하며 광정에서 평생 목회자로 섬겼다.

은퇴 후의 삶은 더 바빴다. 취미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은퇴 후에 한 몇 가지 일을 차례로 적어 본다.

1) 서예전 3회 개최: 그는 60대에 평소 하고 싶은 서예를 위해 서예학원에 다녔다. 물론 1주일에 하루 2시간 정도를 할애하여 서예 기초훈련 과정을 1년 간 한 후, 원하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원장의 지도를 받았다. 충남서예대전에도 4회나 입상 했다

그는 은퇴와 함께 2회나 서예전을 개최했다. 1회 금혼기념서예전(2002), 2회 산수기념서예전(2011)을 통해 백여 편의 성구와 명구들을 한글과 한자로 쓴 전도활동이었다. 공주문화회관에서 각 일주간 개최하여 수백 명의 관람자들이 성구를 읽고 은혜 받게 했다.

2) 문집 2권 발간: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짓기에 취미가 있어 생각나는 것을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평소 적어 놓은 것을 간추려 문집을 발행했는데, 1권 ‘지난 일에 길을 묻자’(2011), 2권 ‘물은 흐르고 세월은 가고’(2019)에 평생 쓴 글들을 담았다.

3) 미얀마 떼뷰광정교회 건축비 헌금: 그는 광정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가 오랜만에 짓는 건축에 1.500만원을 2015년에 헌금했다. 그는 은퇴 후 12년 간 자녀들이 주는 용돈, 참전용사 유공비, 노인복지연금을 아껴 모은 돈을 외국 선교비로 쾌척해 떼뷰광정교회 봉헌식을 마쳤다. 

4) 선산 임씨 영대공파 문중 대표로 연중 제사를 예배로 바꾸다: 전국의 문중 대표들이 매년 4월 둘째 토요일에 해남 묘원에 모여 제사 드렸다. 2009년 그가 문중 대표로 선출되자 문중들을 설득하여 제사를 추모예배로 드리기로 했다. 그는 해마다 4월이면 문중의 목사들을 동원하여 ‘참 복은 하나님을 섬겨야 주신다’는 설교로, 다른 목사들은 각기 순서를 맡아서 조상 추모예배를 진행하며 3년 임기 동안 계속했다. 그리고 그의 글씨로 쓴 기념비를 세웠다.

5) 공주 원로 목사회 회장: 그는 은퇴한 후 공주 원로목사회에 가입한다. 공주기독교연합회에서 30여년 정든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2008년에는 회장으로 선임되어 자주 관광지를 다니며 친목을 도모하고 편하게 모셨다. 회원들이 교파가 달라 의견충돌을 할 때 ‘다 내 탓이다’하고 원만한 해결사의 역할도 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공주의 성자‘였다.

6) 자녀 6남매의 직업이 예수님 3개 사역 닮음에 늘 감사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은 복음전도, 말씀 교육, 치유 역사였다. 그래서 자녀들이 이 3가지 직업을 가져 하나님과 국가에 봉사하며 살기를 평생 기도했다. 그 결과 장남은 대학교수, 2남은 의료기사, 3남은 고교교사, 4남은 내과의사, 5남은 성결교회 목사(임충균), 막내딸은 목사 사모가 되었다. 

그러나 애석한 일도 있었다. 신실하던 장남(임옥균) 교수가 1년간 암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2018년 12월에 61세로 아버지보다 먼저 소천했다. 그는 장남이 먼저 소천한 후 건강이 안 좋아지더니 마침내 급환으로 2023년 1월 3일 92세로 소천, 광정교회장으로 치른 후 천안의 가족묘원에 안장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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