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해 늘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단호해야 한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을 기복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을 참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 설교를 듣는 순간에 내 자신이 참 신앙인의 모습과 삶이었는지 뒤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의 소설가이면서 언론인이었던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 하느냐에 좌우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과연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는 신앙과 삶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고 하셨다. 또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역에 있어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의 신앙과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우리들의 신앙과 삶 또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서 비롯된다. 성경에서 순종의 아이콘은 이삭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자신이 번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 아브라함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순종하여 종 엘리에셀이 데려온 신부감 리브가와 결혼을 하였고, 흉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백배의 복을 받은 인물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관련된 순종과 충성의 진수인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통해서도 많은 교훈을 받게 된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으로 이삭을 낳기 전까지는 사실상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여겨진 인물이었으며(15:2), 창세기 24장을 보면 아브라함 소유의 모든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종들 가운데 실권자였다. 그러함에도 엘리에셀은 주인 아브라함으로부터 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메소보다미아(하란)에 가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오도록 사명을 받고 수만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순종하여 그 길을 떠났다. 

엘리에셀의 순종과 충성의 진수를 살펴보면,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예정되었던 자였으나 이삭으로 인하여 상속자가 되지 못했어도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오라는 주인의 명령에 시기질투나 불평불만 없이 순종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 재물을 탐내어 다 거머쥘 수 있었으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욕심을 버리고 주인을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을 향한 ‘나의 주인’ ‘우리 주인’으로 호칭하며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 주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또 하란의 우물가에서 물을 길으러 나온 여인들을 만나자마자 주인이 주신 사명을 잘 완수하고 주인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한 사람이었다(24:12). 

이뿐만 아니라 엘레에셀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음식을 거절하겠다고 했다. 엘리에셀은 주인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고집을 굽히지 않은 단호함을 가진 사람이었다(24:56). 엘리에셀처럼 우리들의 신앙과 삶에도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충성이 적용되어야 한다.

필자를 비롯한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을 변화시켜 참신한 신앙인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명에 대한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 그 사명을 위해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해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단호함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순종과 충성의 본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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