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킨 것은 그 높이나 크기 또는 과정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목적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늘에 닿도록 높은 탑을 쌓고 이름을 떨쳐보자고 한 의도는 사방으로 흩어짐을 면하려는 뜻의 대역사였다. 하나님께서 태초의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는 명령을 주셨고, 새로운 시조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도 거듭하셨지만 시날 평야에 이르러 더 이상 전진하기를 거부하고 정착 생활을 시도한 것이 바벨탑이었다. 

▨…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러 있는 거류민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가라!”(lek leka)라고 명령하셨다. 라이프 스타일의 개선이나 논리와 신비의 추구가 아니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땅을 향하여 출발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라”가 아니라 “가라”였다. 아브라함 개인이나 한 부족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를 이 땅에 가득하게 하려는 사명의 부르심이었다. ▨… 인류의 역사 속에 이주하지 않은 민족은 없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시작된 인류가 끊임없이 이주하였기 때문에 오늘 지구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슬기 사람(HOMO SAPIENCE)이란 이름에 빗대어 이주하는 사람(HOMO MIGRANS)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은 호모 미그란스를 심사하는 이미그레이션(immigration)에 서서 입국 심사를 받는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입국 거부의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 교회는 12월 첫 주일부터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교회력의 새해를 시작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며 성탄절 4주 전에 새로운 달력을 시작하는 까닭은 이어지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 등 일상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도록 가르치려는 까닭이다. 축하의 절기에 머물지 않고 주님이 오셨고,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 종말론은 신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며 뒷전이 아니라 우선이라고 한 몰트만은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전쟁의 참화속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옳으심을 넘어 희망의 생명력을 경험하였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회심에 머물지 않고 변화되기를, 교회와 신학이 해석에 머물지 않고 변혁의 주체로 살기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기다림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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