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무장정파에 대한 보복을 빌미로 한달여 계속되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은 이제 눈을 뜨고는 볼수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까지 전쟁의 폭력 앞에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인간의 분노와 폭력성은 처음 사람 아담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형 가인의 살인과 동생 아벨의 죽음’으로부터 유래했다. 그 사건을 보며 소설가 황순원은 인류를 ‘가인의 후예’라고 불렀다.

죄는 더해지고 악은 더 독해지는가? 마치 짐승의 세계처럼 서로 밥그릇을 놓고 들이 받고 으르렁대는 세상 ‘신은 위대하다’ 말하며 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저주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도리어 신을 조롱하고 분노를 발하며 땅의 풍성함을 독차지 하려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 하나님은 땅과 하늘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준비하셔서 사람이 그 자연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인간들과 함께 일하시는데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은혜를 망각한 인간의 배은망덕 본성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인간성은 도리어 황폐해지고 고독해지는 문명사회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 서로 적대하는 양극화 정치, 둘째, 파괴되어가는 민주적 규범, 셋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직 지도자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이스라엘 집권세력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노선으로 인한 극심한 국론분열과 시오니즘 그리고 가자를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 이슬람 광신주의 집단이 충돌한 전형적인 절제와 타협과 정치적 역량이 부족해 나타난 재앙이었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종교적 가르침과 민주적 규범을 망각한 까닭이었고, 또한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지혜의 부족을 언론과 다른 정당과 종교, 정치세력에 전가하는 실패한 정치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폭력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하나는 충동적 분노 폭발형이 있고 또 하나는 습관성 분노 폭발형이 있다. 전자가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후자는 분노의 폭발이 경험적으로 학습화되면서 습관화된 형태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과거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원한의 골이 깊어졌고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으로 대변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골육상쟁이었다.

두 종교는 성육신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진리에서 떠나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드리기까지 사랑하신 아가페적 사랑을 알지 못하는 두 집단 간에 나타난 분노조절 장애가 습관성 분노 폭발형으로 발생한 충돌이다.

문명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속에서 두 집단은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수천 년의 고향땅에서 떠나 디아스포라로 유랑하던 이스라엘 민족, 2차 세계대전 나치의 600만명 유대인 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 비극의 피해자에서 야만적 보복 전쟁의 가해자로 전락한 이스라엘의 처지, 전쟁을 원치 않는 온건한 다수의 무슬림과 극단주의 무슬림의 분열, 갈등속에서 이제는 그들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재건 동력을 빼앗겨 자신들마저 죽을 운명을 맞은 하마스 전쟁의 승자는 없고 영원한 패배자들만 양산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두 집단의 전쟁 과정을 보며 인류는 다시 한 번 원치 않는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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