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전쟁이 벌어졌다. 살아남으려고 비행기를 탄 다섯 살에서 열두 살에 이르는 영국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소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투쟁을 벌였다. 그 투쟁은 “인간의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정의를 소설의 형식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이수은, 평균의 마음) 인간의 본성은 악일지도 모른다는 속셈은 밀어 둔 채로…

▨… “핵 분열의 엄청난 파괴력을 알게 된 인류가 과연 영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냉전시대의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에 『파리대왕』은 인간 내면에 기저하고 있는 악, 권력욕, 지배욕의 일면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회와 사회를 유지하는 규율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드러내준다.” (유종호, 작품 해설)

▨… 성서에서 파리대왕 곧 바알제붑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듯이 악마를 상징한다. 이 악마는 아직 미숙한 아이들의 도덕성을 퇴행시키고 인간 본성의 어둠을 격발시켜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과는 상관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오직 나의 생존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부각되어 파렴치한 권력지향적 성정까지도 움켜쥐려고 덤비고 있는 것이다.

▨… 이쯤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파리대왕 같은 코로나가 격발한 제도적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성결인다운 믿음’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가를 아니면 바알제붑인 파리대왕이 격발시키는 인간의 어둠에 삼키워져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제를 무인도의 아이들처럼 내버린 것은 아닌가를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그 점검은 회개여야 함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를 다시 세우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의 바탕 위에서만 이뤄졌음을 교회사는 증언한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로 주신 것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머리 위에서 창조주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다”(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남명 조식이 퇴계에게 후학을 잘 지도하시기 바란다고 편지를 써 진언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구설수에 오르는 타인지도보다는 본회퍼를 지지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은 파리대왕의 소년들도 아는 것 아닐까. 입맛이 소태같아지신 애독자님들에게는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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