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박사 전기 ‘거룩한 바보···’
농민 결핵-기생충 퇴치에 한평생
전북 일대서 10년간 21만명 돌봐

사단법인 전킨기념사업회가『거룩한 바보 쌍천 이영춘 박사(서종표·이주민 공저)』를 출간했다.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는 의학계에서는 기생충 분야 예방의학 선구자로 한국교회와 전북지역에서 사랑의 인술을 펼친 기독교 선각자로 인식된다.

이 책에는 8·15해방 이후 근대화의 시기에 ‘농촌은 민족의 원천’이란 사명감으로 ‘결핵, 기생충, 매독’에서 구하기 위해 헌신한 의사 이영춘 박사의 일대기가 소개되어있다.

평남 용강에서 태어나 평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이영춘은 젊은 시절 근막염에 시달리다 세브란스의원 출신 김찬두(독립운동가)에게 치료를 받고 그의 권유로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후 일본 교토국제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조선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가 되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시골 의사’로 한평생을 살았던 그는 훗날 ‘조선의 슈바이처’, ’나라를 구한 의사’라는 등의 칭호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및 해방 후 농촌은 예방의학 정착이 절실했다. 1935년 4월, 호남평야 구마모토 농장에는 조선인 소작농 2만여 명이 근대식 농법에 의해 농사를 짓고 있었으나 일제의 쌀 수탈 정책으로 빚어진 소작농의 증가와 그 소작농들의 위생 및 보건 상태가 심각한 현실이었다. 평생 인술을 통해 교육자, 사회사업가, 계몽운동가로 살았던 이영춘은 호남의 일본인 농장 소작인들 위생환경에 충격을 받고 ‘구제’를 결심해 군산, 익산 등지에서 자전거로 왕진하며 10여 년 간 21만 명을 돌보며 헌신했다.

또 근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진료소를 넓히며 진찰실, 수술실, 약국 등을 분리했다. 또 양호실의 설치와 결식아동 급식, 결핵 예방주사도 처음 도입하고 의료보건 체계 완성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1951년 보건교사 양성을 위해 개정 간호고등기술학교(현 군산간호대학)와 정읍 화호여·중고를 설립하는 등 교육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평생 농촌위생만을 위해 산 그는 전재산을 재단법인에 바쳐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며,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영혼과 육신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란 뜻의 ‘쌍천’이란 호는 의사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개혁 정신으로 남아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