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하순경 우연히 지인을 만나서 차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삶의 여정에 대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의 여유있는 시간을 함께 한적이 있다. 그러는 가운데 누가 약속이나 한 듯이 참으로 가지 말라고 꼭 잡아두고 싶은데 잡아둘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며 그렇게 찌는 듯한 무더위도 이젠 조석으로는 제법 서늘한 바람이 두볼을 스칠때면 가을이 집 마당에 다가와 있음을 피부적으로 느낄수 있다고 서로 웃으며 정담을 나누곤했다. 그런데 조금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지난 며칠 전에 안식구랑 막내딸이 함께 상견례를 하고 왔어요, 막내딸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아, 그래요? 정말 잘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고 정중히 말씀을 드리니 지인분께서도 “이렇게 축하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서로의 일을 위해 그 자리를 뜬적이 있다. 

상견례, 우리는 일상적으로 결혼을 앞둔 성인남녀가 사랑의 결정체를 맺기 위해 양가의 부모님을 뵙게되는 예식 절차의 하나라고 생각을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두 번씩이나 상견례를 치룬적이 있다. 한번은 아들자식이고, 또 한 번은 딸 자식 때문이다. 

그런데 웬지 상견례 날짜를 잡아 놓으면 결혼 당사자는 물론 양가의 부모님들도 가슴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도대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의복은 어떻게 차려 입어야 하나, 음식은 또 어떻게, 장소는 어디에서 등등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이야 많이 개방되어 내가 두 자녀를 결혼시킨 2000년대 중반하고는 매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인륜지 대사란 점에서는 지금도 양가 부모님들이 조심스럽기는 매 일반일 것이다.

그런데 상견례가 꼭 결혼을 앞둔 인륜의 대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선학교에 근무할 때를 뒤돌아보면 학교에서도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물론 타직장도 그렇겠지만 학교는 새학기 초가  되면 타학교에서 근무하시다 본교로 전근오신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상견례가 있기 마련이다. 선생님과는 교직원회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과 기존의 선생님과 상견례가 있게되고 이어 부장 선생님 임명과 학급 담임선생님, 각 부서에 따른 업무분장, 시간표 등 참으로 분주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 후 입학식날이 되면 학생들은 학생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설레기는 매 일반이다. 학생들은 어느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인가, 과목별 선생님은 어느 분인가 하며 담임선생님과 과목별 선생님이 소개될 때마다 환호성과 침묵이 교차됨을 나 역시 경험해 왔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금년에 우리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의 학생들인가 하며 마음속으로 궁금해 하신다. 이어 학생들 간에도 서로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금년에 입학하는 신입생과 재학생인 2,3학년 학생들의 상견례가 이루어지곤 한다. 

상견례, 말만 들어도 설레임과 걱정스러움이 함께 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한다. 행복한 새로운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혼례예식의 한 절차인 상견례, 학교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고운 인연, 그런가하면 학생들 간에서는 선후배를 넘어 동문으로서 자리잡는 계기가 되는 첫 만남, 이렇게 볼 때 상견례는 축복의 시작이요,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여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새롭게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30여년 지켰던 교단에서의 상견례, 두 남매의 결혼에 따른 상견례, 각종 단체에서의 상견례, 교회에서 새신자와 상견례, 하나님과 성도 개개인과의 상견례 등 생각해 볼수록 나름대로의 다양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모양의 상견례를 한다. 이 상견례는 어쩌면 우리네 삶에 있어 성숙해가는 한 과정의 일부가 아닌가 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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