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은 ‘종교개혁 506주년’ 되는 날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해 그 부당성을 95개조 반박문으로 발표한 지 506년이 된 것이다. 당시 루터가 주장한 핵심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었다. 루터가 외친 개혁의 본질은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제대로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신앙적 결단이었다. 50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정신은 유효하고 이는 내 죄를 ‘나부터’ 먼저 자복하고 오직 믿음과 은혜, 성경에 충실함으로써 오늘날 종교개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우리 삶 속에 예수의 가르침을 새기는 자기 변화로부터 종교개혁의 정신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정말 수없이 새겼던 말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아야 한다’는 결단이 ‘나부터’ 일어나야 한다.  나의 참회가 이웃과 교회는 물론 사회 전반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외치기 전에 철저한 회개와 영적·도덕적 각성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단순히 가톨릭이라는 타락한 종교만을 개혁하는데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 인권, 교육 전반에 걸쳐 이 세상을 뒤집었다. 루터 한 사람의 결단이 중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던 것처럼 ‘나 한 사람’의 결단이 교회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저항이 필요한 시대다.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저항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당시 면죄부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교황에게 일반 신도들은 저항할 생각마저 할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루터는 성전을 건축한다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파는 교황과 가톨릭교회에 대해 ‘성경을 기준으로’ 항거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신앙 양심과 믿음에 따라 황제와 교황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비텐베르크 슐로스교회 정문에 내건 95개조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서막이 되었다. 

만일 당시 루터가 라틴어 성경만 고집하는 전통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성경’은 가톨릭 사제들의 전유물로만 남았을 것이다. 자기 구원을 위해 선행을 쌓거나 많은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야 하는 중세의 신앙 양식에 항거하지 않았다면 ‘오직 믿음으로’ 역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의 제국 의회에서 루터가 가톨릭 권력자들에게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항변하지 않았다면 ‘오직 은총으로’도 박제화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루터의 한 사람의 저항으로 말미암아 사제들만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류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누구나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이는 개인일지라도 지속적으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개혁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프로테스탄트의 생명인 자기개혁과 교회개혁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깨어지고 부서져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해야 한다. 이제는 종교개혁 주일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모든 성결인들이 바른 삶과 신앙을 실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개혁은 성직자만의 몫이 아니다. 지금, 나부터, 작은 일에서 부터 나서야 한다. 개혁은 언제나 ‘나부터’ 실천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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