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고, 상황이 쉽게 해석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혼란스러워 하며 당황해 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지나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왜 그 일들을 허용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를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출애굽의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히브리인은 학대를 받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더 번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사내아이가 태어나거든 모두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위 출신의 아므람이 동일한 지파의 여인 요게벳에게 장가들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두 사람은 기대와 감사 대신 근심이 먼저 앞섰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가정에 사내아이가 태어나기라도 하면 그 날로 그들은 그 아이의 죽음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 딸이 태어나게 해 주세요. 꼭 딸이어야 합니다”라고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게벳은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다가오는 암울한 그림자로 인한 아므람과 요게벳의 좌절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믿음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요게벳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요게벳은 그 아이가 …잘 생긴 것(히. 키 토브 후)을 보고(히. 봐테레)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습니다』(출 2:2). ‘잘 생겼다’(히. 토브)는 말은 단순히 잘 생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의 ‘토브’라는 말은 본래 ‘좋다’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목적에 잘 맞다 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정말 정확한 때에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창 46:4)을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었던 요게벳은 자신의 아이 모세가 그 언약을 이루기에 합당한 아이였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히.라아 출 2:2)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0절은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 모세가 났을 때에 부모가 믿음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모세의 어머니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실제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석달 동안 숨겨두었다’(히. 쉴로샤 예라힘, 2:2)고 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요게벳이 모세를 숨겨준 기간이 3개월이라고 하는 정보를 주기보다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음을 말합니다. 비록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고,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세를 양육했던 것입니다. 

축구에서 패널티킥을 찰 때 볼의 방향은 왼쪽, 오른쪽 각 30%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으로 차는 확률도 30%는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골키퍼가 가만히 서서 중앙으로 오는 볼을 기다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른쪽이 되었든 왼쪽이 되었든 몸을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만히 서 있다가 공이 왼쪽이나 혹은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기 보다는 비록 틀린 방향일지라도 몸을 날리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기다림은 고통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그 터널의 끝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곧 믿음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모세를 통한 출애굽의 역사는 기다림이라는 인내를 통과한 요게벳이라고 하는 한 여인의 믿음을 거름 삼아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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