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8년 65세로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교회에서 베델성서공부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 공부를 통해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하였다.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이었는데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우리 한국 성도들뿐 아니라 모든 목사님들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그렇게도 많이 썼던 축복이란 단어를 하나님은 왜 안 쓰시고, 즉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을 내리고~”라고 하지 않으시고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을까? 나는 너무나 충격과 경악을 느꼈다. 그러면서 ‘빌 축’이란 축(祝)자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을 어떤 자가 축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이시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주소서”하고 복을 비는 행위임을 깨달았고 따라서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리시는 절대자이시니까 아브라함에게 복 내리기를 비는 뜻인 축복하다란 말은 절대 우리 하나님께서는 쓰실 수 없고 다만 복을 직접 하사하시는 일만 가능하시구나를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 한국의 모든 목사들과 평신도들은 하나님께 너무 결례를 범해 왔구나하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졌었다.

그 후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말을 찾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명사도 찾아볼 수 없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고, 왜 이런 일이 백년간이나 지속되어 왔는지 의문이 생겨서 잘못된 교회 용어를 타파하자는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으로 이렇게 잘못 쓰여 온 축복이란 단어는 하나님께 써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효력을 얻기는 어렵다고 느꼈을 때 다행히 우리나라의 모든 교단들은 올바른 교회용어집을 만들어 일선교회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연 몇 교회가 그것도 성도 전체에게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 축복해 주십시오”를 외치는 기도를 하고 있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고군분투하는 나의 노력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전주의 나현숙 목사님이 서울에서 국경일에는 변두리 대형 호텔 컨벤션센터를 빌려 집회하시는데 어느 친지의 권유로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 집회에서 쓰는 용어도 역시 부족한 점이 보여 나는 펜을 들어 그 목사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내 편지를 뜯으려는 찰나에 예수님께서 목사님께 “내가 사랑하는 장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서울 책임자에게서 전해 듣게 되었고 여기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 인구가 수억 아니 수십억 아니 수백억이라 할지라도 무소부지하시고 무소불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일일이 다 잘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운동을 모든 교단의 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백 년간 여전히 하나님의 위신과 권위를 무시하고 훼손하는 기도를 계속할 것이니 이를 생각하면 나는 너무 답답하다.

나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근원적으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영국에서 발행한 롱맨 현대 영어 사전(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에서 ‘bless’란 단어를 찾아보고 아연실색하였다. 이 동사는 ‘복을 빌어 주다’와 ‘복을 내리다’의 두 뜻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고, 서양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왜 잘못된 해석으로 가르쳤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영어의 ‘bless’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한국어 축복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