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번지의 기적··· 으슥한 골목이 커피향에 북적

53년이나 된  아파트 1층 상가에
2015년 카페 연다니 모두 말려
개업하자 신기하게도 ‘문전성시’
하루 500명 몰리고 직원도 3명
덩달아  문닫은 점포들도 부활
“상점들  뭉치는 마을기업이 꿈”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좁은 골목길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

매일 아침 원두 볶는 향기로 이 길을 채우는 건 이름만 들어도 고소한 ‘커피방앗간’, 주재현 집사(아현교회·사진)가 운영하는 카페다.

1970년에 지어진 국내 최초 주상복합성요셉 아파트를 접한 100m 남짓한 이 골목에는 주 집사의 ‘커피방앗간’을 비롯해 꽃집, 온라인 문구점, 네일샵, 미용실, 40년 된 계란 집, 두붓집, 떡집, 식당, 기름 방앗간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밀집해 성업 중이다.

 

주 집사의 '커피방앗간'.은 50년 넘은 아파트 앞 골목에 위치한다. 사진은 이 골목에서 열린 장미축제 때 카페 앞 원두를 판매하는 모습.
주 집사의 '커피방앗간'.은 50년 넘은 아파트 앞 골목에 위치한다. 사진은 이 골목에서 열린 장미축제 때 카페 앞 원두를 판매하는 모습.

훈훈한 인심에 거리 분위기도 좋다. 서로 얼굴과 사정을 잘 알고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다. 주기적으로 마을 상인들끼리 사업을 돕기 위한 모임도 열린다. 걷기 좋은 보도블록과 말끔한 건물로 젊은 사장과 손님들이 활발히 오간다.

그러나 이 골목은 불과 7~8년 전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장사 하던 10여 곳 가게 중 3분의 2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오래된 아스팔트길 곳곳이 움푹 파여 걸어 다니기도 불편했다. 골목 한쪽을 전부 차지한 폐창고는 길고양이 소굴이었다. 돌보는 이가 없어 냄새가 진동했다. 주 집사는 이 거리에 홀로 카페를 열었다.

 

주재현 집사는 인적 드문 골목에 당차게 카페를 열면서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이 길을 살렸다고 고백한다.
주재현 집사는 인적 드문 골목에 당차게 카페를 열면서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이 길을 살렸다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원두 로스팅 전문 카페였기 때문에 손님들이 직접 찾아오기 어려운 골목이라도 로스팅한 원두를 납품하러 다니기엔 괜찮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그는 “창업 고민 중 위치와 임대료를 고려해 여기로 결정했다”라고 아무도 없던 골목에 카페 문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인적 드문 거리는 한산했다. 주 집사가 상권 조사차 하루 종일 길에 머문 날 총 6명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래도 그곳에 오픈을 감행했다.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카페를 여냐고 묻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의아해할 정도였으니, 이 자리는 탁월한 안목으로 고른 자리가 절대 아니다. 카페를 열기 위해 3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혼자 로스팅해서 영업하는 건 처음인지라 실력도 변변찮았다”면서 이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기다리던 중 이 자리를 주셨을 때 아내도 나도 확신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개점 준비 중 둘째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불안감과 경제적 압박도 심했다. 모든 상황이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뚝심있게 개업을 했다. 안 될 것 같은 자리에 카페를 여니 안쓰러웠던지 바로 옆 떡집에서 매일 떡을 가져다줬고, 점차 카페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

 

중림동 149번지에 위치한 주재현 집사의 '커피방앗간' 전경
중림동 149번지에 위치한 주재현 집사의 '커피방앗간' 전경

2015년 8월, 그렇게 이 골목 첫 카페가 문을 열었다. ‘커피방앗간’이 문을 열자마자 주변 직장인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작 6명 지나다니던 거리의 41.25㎡(12.5평)짜리 카페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관이 펼쳐졌다. 카페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골목으로 알려지면서 ‘KBS 다큐 3일 성요셉 아파트 72시간’ 편에 카페가 전파를 탔다. 당시 주 집사는 “어떻게 알고들 오시는지 저도 신기합니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다. 이후 손님이 더 늘어 하루에 500여 명씩 카페에 찾아왔다. 직원도 3명을 뽑았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주 집사는 “골목 전체가 살아나는 일은 저의 힘으로 할 수 있던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내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님이 분명했기에 주변에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섰다”라고 말했다. 받은 복을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잘나가는 카페 사장이 되었지만 ‘내 가게 확장’에만 주력하기 보다 이웃에 눈을 돌렸다. 주민센터 내 카페 오픈을 도왔고, 동네 사람들에게 커피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주었다. 서울시 도시재생센터가 이 골목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가 외관 교체 작업이 이뤄졌고, 비가 많이 오면 건물이 새던 것도 고쳐주었다. ‘걷기 좋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 보도블록도 새롭게 깔렸다. 

 

말끔하게 단장한 149번지 골목. '커피방앗간'이 골목에 들어온 후 인파가 몰리면서 유명한 골목이 됐다. 폐창고로 골칫거리던 길 한쪽은 서울시의 도시재생센터 주도로 재건축 되었고, 보도블록도 새롭게 깔렸다.
말끔하게 단장한 149번지 골목. '커피방앗간'이 골목에 들어온 후 인파가 몰리면서 유명한 골목이 됐다. 폐창고로 골칫거리던 길 한쪽은 서울시의 도시재생센터 주도로 재건축 되었고, 보도블록도 새롭게 깔렸다.

서울시는 또 골칫거리였던 중림창고를 전면 재건축해 창고 느낌의 주민 소통 공간으로 재생했다. 현재 서점, 구청 연계 배움터 등으로 활용하며, 주 집사도 이곳에서 종종 커피 교육을 한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상인들은 거리를 잘 유지하기로 상인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관계가 좋았던 주 집사는 상인회 총무를 거쳐 ‘149번지 상인회’ 대표를 맡게 됐다.

 

149번지 상인회 주관으로 진행한 장미축제에서 주민들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149번지 상인회 주관으로 진행한 장미축제에서 주민들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주 집사는 매년 골목에 장미가 활짝 피는 주말을 이용해 상인회 주관 장미축제를 열었다. 올해로 2년째 연 축제에 각 상점 주인들은 팔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팔고, 특별히 어린이 셀러도 모집했다. 원데이 커피 클래스, 페이스 페인팅 등 차 없는 거리 축제로 지역 아기 엄마들의 호응이 좋았다. 도매 전문 떡집 주인을 도와 패키징을 바꾼 다음 소매 판매를 시도했는데, 이날 축제에서 처음으로 완판을 경험했다.

주재현 집사는 “가게 한 곳만 잘되는 게 아니라 모두 같이 잘되기 위해 다양하게 판로를 개발하고 돕는다”라며 축제의 취지와 상인회의 비전을 함께 밝혔다. “지금 진행하는 각 상점 로고 디자인과 패키징 개발 등에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하나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149번지 상가들이 시너지를 내는 ‘마을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다”라는 주 집사. 

자신은 한 게 없이 저절로 잘 돼서 할 말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주 집사의 발걸음이 오늘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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