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나드 메이도프가 6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금융 사기로 150년 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의 아내는 일종의 중혼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저도 포함해서)가 이제까지 살면서 존경하고 믿어왔던 사람은 제 남편입니다. …  하지만 사기에 대한 고백으로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고 이 끔찍한 상황을 야기한 다른 남자가 있습니다. … 이 무시무시한 사기를 저지른 사람은 일생 동안 제가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닙니다.”(참조 : 
다니엘 액스트, 자기절제사회) 상상할 수조차 없는 150년 형 때문이었을까, 메이도프의 아내 루시는 자신의 남편이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부부의 인연을 끊지는 않았다.

▨…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노출되는 순간 누구나 그 잘못에서 숨어 버리고 싶어한다. 그 본성을 로마서는 꼬집어 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뉘 있어 하루 종일 우리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이 말씀을 부인할 수 있는가.

▨…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어느 목사님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도록 몰아붙이신다. “기독교인은 회개라는 걸 한다. … 그때까지 제 생각에 죄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다른 본성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했지만, 아직도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기독교인을 향한 고발이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지 않은지 묻고 싶다.(참조 : 김남준,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우리 성결인들은 유독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갈구한다. 장로님들의 수련회, 권사님들의 수련회 아니, 청소년들의 수련회도 성령의 임재를 간구한다. 이 간구 때문에 성결인들의 모임은 시작이 성령 동행이면 마침도 성령 동행이다. 그러므로 더욱 확실히 하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는 것을. 따라서 성령 임재의 간구도 우리의 회개가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인가”를 물었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한다면 그 눈물의 자식은 결코 망할 리없다고 암브로시우스는 모니카에게 일갈했다.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면서 내가 해야할 일은 방기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필요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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