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첫 전술핵 공격 잠수함을 건조했다고 밝힌 날, 우리나라의 일간지들은 경쟁하듯 북녘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군옥 영웅함’을 둘러보는 사진을 게재했다. 북한 잠수함의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은 이미 여러 차례 공개되었지만 발사관이 10개나 되는 전술 핵 공격 잠수함의 공개는 남녘의 많은 사람들에게 여차하면 핵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이끌고 있었던 핵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의 민얼굴을 가감없이 공개했다. 그 엄청난 폭발 위력을 직접 확인한 오펜하이머는 그 위력이 인류의 내일을 어둡게 할 것으로 예감했던 것일까. 힌두 서사시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인용해 어두워진 자신의 마음 드러내기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죽음이 되었다. 세상을 파괴하는 자가 되었다.” (참조: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한줄기 섬광이 번쩍하자 히로시마의 아침 하늘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하늘을 뒤덮는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20만 명의 사람들이 20세기의 검은 신화의 탄생을 위해서 한마디 유언도 없이 절멸한 곳 히로시마” 이어령은 히로시마에서 죽은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도시의 그 온갖 것, 문화의 그 온갖 것, 역사의 그 온갖 것이 모두 무너져갔다. 사랑도 신(神)도 꿈도…(참조:『전후문학의 새 물결 ) 그렇다. 히로시마의 비극 앞에선 휴머니즘이란 낱말은 인간을 속이는 느낌만 주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 1954년 미국이 남태평양에 위치한 비키니군도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하자 비키니의 거북이들은 모두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 거북이에게서 인류 절멸의 위기감을 확인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철학자 러셀이 1955년 7월 9일 런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 저명한 과학자 11명이 서명하자 세계 각국 과학자들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핵무기와 세계 평화에 관한 문제 논의를 위해 ‘퍼크워시 회의’를 조직했다.

▨… 1년 넘게 지속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동서진영의 대립을 첨예화 하는 동시에 동북아시아에서도 한미일과 북중러의 연합과 대립을 강화시키고 있다. 자칫 소모전이 되어버린 장기 전쟁이 핵무기 사용의 빌미를 제공한다면? 지옥이 따로 있을까. 히로시마 폭탄의 100배, 1000배의 폭발력이 이제 나는 죽음이 되었다는 오펜하이머의 비탄을 현재화할 것이다. 뉘있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한국교회가 다함께 지혜를,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지금 아닐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