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출생, 여량중앙교회 설립
1950년 8월 공산군에 납치돼 희생

여량중앙교회, 순교기념비 제막 강원도 정선에서 순교한 평신도 지도자 이인석의 순교기념비가 순교 73년 만에 여량중앙교회에 세워졌다.

강원동지방 여량중앙교회(이중석 목사)는 지난 9월 3일 이인석 순교자기념예배 및 순교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이인석은 평신도의 몸으로 여량중앙교회를 설립하고 예배 인도와 설교 등 목회자의 역할을 하다가 1950년 8월 6일 인민군에 납치되어 순교했다. 

이인석은 1933년 5월 평창군 진부성결교회에서 봉사하다가 1941년 정선군 여량리에 의원을 개업했다가 4년 후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공의로 활동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매일 성경 동화를 읽어주었으며, 매일 가정에서 새벽예배를 드릴 정도로 신앙이 신실했다. 이런 이인석은 1946년 9월 5일 여량중앙교회를 설립했고, 이듬해 교회당을 위한 건물도 매입했다. 그러면서  당시 목회자 없던 교회에서 오늘날 평신도 사역자인 ‘영수’로 봉사하면서 교회를 이끌었다. 여량리에서도 그는 신망이 두텨웠다. 당시 의사로서 대한청년단장과 국민회 간부로 활동했던 그는 지방의 유지 역할도 하면서 주민들에 은덕을 베풀고 살았다.  

그러다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는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교회의 책임자였던 그는 두고 온 교회와 성도들이 걱정돼서 피난 간지 16일 만에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에 돌아온 그는 2주일 동안 설교하고 성도들을 돌봤으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하며 지냈다.

그런데 8월 6일 주일 낮예배를 인도하고 귀가 도중에서 인민군에게 납치되어 끝내 춘천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는 고작 38세였다. 부인과 다섯명의 자녀들은 하루 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었다. 게다가 공산군은 그의 가족들을 위협하며 가구와 의료기구, 병원과 가옥 등 전 재산을 몰수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다가 자녀 두명이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지금은 삼남 이금의 장로(춘천 하늘평안교회)가 생존해 있다.  

그의 순교 이야기는 1969년 ‘활천’ 4월호와 오영필 목사가 쓴 ‘성결교회 수난기’를 통해 알려졌다. 

한편, 이날 순교기념예배는 여량중앙교회 성도와 후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재하 원로장로의 대표기도, 이중석 목사의 설교와 축도로 진행됐다. 이중석 목사는 ‘순교자의 뒤를 따라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순교의 피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루게 된 씨앗”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순교기념비 제막식에서는 손자 이정환 장로(강릉교회)가 조부의 약력을 낭독하고 추모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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