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움직이지만,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不正 雖令不從)라는 성현의 말(공자. 논어 자로 편)은 법령의 강제성보다 법의 제정과 집행을 책임진 지도자의 수신(修身)과 도덕성이 먼저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갈등 공화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치와 종교, 각 세대와 교육 현장에 신뢰와 존경을 드릴 지도자는 없는지 묻고 싶어진다. 

▨…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최상의 정치란 억지로 다스림이 없는 경지에 오름으로, 백성들은 그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백성들이 다정함을 느끼고 칭송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배자를 두려워하는 정치는 그 아래이며 백성들이 업신여기게끔 되면 가장 낮은 지배자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다투지 않는다(水善利萬物而不爭). 그러기에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上善若水).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 옳다고 주장하고 내세우는 지도자들이 “덕분입니다”라고 공을 돌리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보게 될까? 

▨… 바울 사도께서 보내신 목회서신에 의하면, 교회의 지도자는 그의 직분이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니 공동체 안팎으로 흠 잡히지 않으며, 그의 사역에 있어서 일하는 태도는 제 고집대로 하지 말아야 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더러운 이득을 탐내지 않고 오직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딛 1:7~8). 사도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실 것이다. 네 직무는 주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제 고집대로 하지 마라. 신중해라.

▨… 사마천은 정치 수준의 다섯 등급을 26문자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사기. 화식열전). 가장 좋기로는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故善者因之) 그 다음은 이익으로 이끄는 것이며(其次利道之)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其次敎誨之) 그 다음은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며(其次整齊之) 가장 못나기로는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最下者與之争). 국민과 다투지않는 정치, 성도와 다투지 않는 목회자, 교회 전체가 자연스럽게 존경하고 따르는 교단의 임원과 각 부서의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 하나님을 위해 가장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고 죽이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사울. 그가 달려가는 다메섹 길에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는,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를 만난 일도 박해 한 일도 없는 그에게 억울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충류의 비늘이 벗겨진 눈으로 본 새로운 세상에서 그가 본 예수는 고난받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곧 교회였다. 그리고 그는 고백하였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라고(엡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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