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성경의 인물에 대해서 과대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믿음의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해도 그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갈등을 노출하였으며 그들 역시 우리가 가진 약점과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브람도 예외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미지의 땅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언약의 성취는 요원했습니다.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저 희망고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자 아브람은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창 15:2) 어떻게 보면 아직 아들이 없었던 그에게 자신의 종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말은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소망하는 믿음의 몸부림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문화적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종이 양자로 입적되는 경우 그 종은 그 주인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종 엘리에셀의 경우 그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된다고 해서 하등의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아브람의 요청이 신앙적인 발언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는 아브람의 불신앙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분명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히. 제라아)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5)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네 ‘자손’(히. 제라아)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후손’이라고 하였을 때 히브리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라는 의미의 ‘벤’ 혹은 ‘바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제라아’ (15절)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엘리에셀이 아브람의 상속자는 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언약하신 ‘후손’(히. 제라아)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람도 이러한 하나님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내게 씨(히.제라아)를 주지 아니하셨으니...”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로 인한 마음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2절)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어로는 ‘아니 홀레흐 아리리’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자면 “나는 자식이 없는 채 걸어가고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사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불편한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혈혈단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며 복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느 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자신의 육신이 노쇠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한 아브람이 왜 그토록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믿음의 조상 아브람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택하신 것은 결코 그가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한 체질을 아시며 모든 허물을 감싸 주십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아브람과 같이 많은 허물과 죄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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