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은 달 탐사 50주년이 되던 해(2019)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세계 천문학자 5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주목한 심채경 교수의 수필집이다. 그는 “현대의 천문학자는 천문대 대신 연구실에서, 망원경 대신 미항공우주국의 관측자료를 가져와 컴퓨터 속의 데이터와 씨름을 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신학자와 목회자는, 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보는가? 

▨… 리처드 헬버슨 목사는 말했다. 처음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람들의 교제 모임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하여 철학이 되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고, 유럽으로 넘어가서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에서 기업이 되었다. 한국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은 이렇게 덧붙인다.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다양한 이벤트와 경영 논리가 교회 중심에 자리 잡고, 성장학과 숫자의 맘몬이 진리를 대치한 신학교육의 현실을 보며 누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환전상의 판매대를 둘러 엎으시며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건만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있다.”라고 책망하셨다(마 21:13).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성전과 제사 제도를 통해 막대한 이권을 세습하며 누리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분노하였다. 그들은 - 거룩한 종교 지도자, 선민 유대인- 마침내 예수를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고 믿던 세상에서 태양이 중심이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인류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그러나 사제였던 그의 철학적 직관에 의한 지동설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천체 관측에 망원경을 도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 과학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교황청의 권력과 중세기의 교리는 당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대한 이 과학적 발견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로 보고 있을까?

▨… 흔히 예측 가능성을 넘어서는 수치를 가리켜 ‘천문학적’이라 하고, 탁월하고 아름다운 존재에 대하여 ‘별처럼’이라 한다. 과학이 이런 문학적 표현을 물리학에 대한 무지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수천,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어도 북두칠성과 북극성은 여전히 항해자들에게는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이며, 샛별이 등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보지 않는 세상이라도, 신학자는 여전히 챗봇이 아닌 성경을 보고, 목사는 여전히 권력이 아닌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교회는 여전히 숫자가 아닌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며, 그리스도인은 맘몬이 아닌 예수만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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