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임을 알고 깨달았어도 용서를 하는 일이 불편할 수 있다. 내 마음이 깨달음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요나서에 나타나 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대언자였다. 그러나 그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원치않는 소명에 하나님과 평행선을 그으며 나아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용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을 힘들게 하였고, 또 대표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것을 요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해자의 용서를 받아 들일 수 없을 때
요나서 4장은 1절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여 재앙이 내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의 잘못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적용한데 있다.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어야 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은 요나의 하나님만이어야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방인들에게, 그것도 자신들의 원수인 니느웨에게 임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요나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넝쿨을 주시고 그 잎으로 햇빛을 피하게 하셨지만, 다음 날 벌레가 그 박넝쿨을 먹어 잎이 말라 없어지자,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라고 탄식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으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0-11) 라고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요나는 하나님이 용서하신 니느웨를 용서하지 못하겠고, 원수를 그렇게 용서하신 하나님이 미웠다. 바로 이 지점이 용서의 불편한 지점이다. 가해자가 회개하였고, 용서를 구했으니, 용서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미운 감정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받은 상처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마음이 평행선을 그으며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결론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요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원하시는 하나님! 평행선 속에서 책이 마쳐지지만, 어느 곳에서도 요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는 구절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이렇게 미적한 결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세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너를 통해 일 할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 같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살아 있는 우리는 아직도 기회가 있는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사랑 고백을 진하게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지금 하나님은 그 사랑을 관심으로, 기다림으로 표현하고 계신 것이다. ‘아무리 네가 불순종하고, 네 멋대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너를 통해서 일 할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은 지속되며,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있다. 그렇기에 요나서는 4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메시지-‘너를 통해 일할거야’
요한복음 21장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도,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다시 배신한 제자들인데,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먼저 건네신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계신 예수님이시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에게 다시 소명을 주시며, ‘나는 너를 통해서 일할거야!’라는 당신의 마음을 확인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최고로 표현하신 방법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기”(롬 5:8) 때문이다. 

우리가 죄인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표현해 주셨고, 사랑을 표현하셨다. 왜냐하면 ‘나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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