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늘상 그래왔듯이 세면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묵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지난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아니 내일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어느 책에서 읽은 두 사례가 불현듯 떠 올랐다. 하나는 링컨이 대통령 재임 중이던 어느 날의 일이다. 재주가 비상한 인물을 등용하라는 말을 친구에게 듣고 한 사람을 만나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링컨은 첫눈에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를 추천한 친구가 링컨에게 “왜 재주가 있는 사람을 쓰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링컨은 “사람은 나이 사십이 되면 적어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재주는 있을지 몰라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기에 채용하지 않았다”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미국의 유수 대학의 하나인 예일대학교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의하면 훌륭한 세일즈맨들에게는 무엇인가 독특한 점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단정한 외모, 성실한 인격, 일에 대한 적극성, 상대방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설득력, 그리고 미소라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문득 두 사례를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나는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가에 대해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쩌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갈수록 아름답고 거룩하고 품위 있게 변화되느냐 아니면 더 추하고 속된 모습으로 변화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삶의 방향에 따라 좋게 변화될 수도 있고 나쁘게 변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타고난 외모가 준수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끊임없이 덕을 쌓으며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성과 감성을 하루하루 쌓아간다면 그 모습은 날이 갈수록 인격적으로 아름답게 변화될 것이다. 반면에 타고난 외모가 아무리 준수하더라도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나태한 삶에 빠져 자신의 인격적 품위를 높이지 못한다면 그 모습은 갈수록 추하고 속되어 인격적인 향기를 잘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숙을 위해 외적, 내적인 면을 골고루 연찬하여 품성을 도야할 때 그의 인격에서 풍기는 은은한 이미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가져다 줄 것이다.

조용히 거실에 앉아 묵상에 잠겨본다.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내 나이에 걸맞은 얼굴인가? 내가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은 올바른가? 나에게서 나는 내음이 주위를 감동시킬 만큼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고 있는가? 지나온 나의 삶을  냉철히 반추해 보면서 마음속으로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삶의 설계도를 그려본다.

그렇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떤가? 되묻곤 한다. 오늘이야말로 모름지기 자신의 얼굴 즉 내적 성숙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외모가 은은한 향기를 발할 수 있도록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함을 실감한다. 외모는 그 사람의 말 없는 언어요, 감성 어린 표현이다.

불현듯 “사람은 자기 얼굴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기에 더욱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 안병욱 교수의 말씀이 오늘따라 마음속 깊이 저미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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