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은 “한 사회의 발전과 부의 창출에는 원칙과 규범의 준수가 필요하며 한번 파괴된 윤리를 회복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소용된다"며 도덕 자본(Moral Capital)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덕문제를 자본 개념으로 파악한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타당한 생각이다. 이제 물적, 인적 자본 외에 도덕 자본, 도덕적 인프라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에 있어서 도덕성이 경쟁력이다. 개인의 도덕지수가 리더로서의 중요한 자질이 되며, 기업의 윤리성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도덕지수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올바르고 정직하게 이해하며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능력이다. 도덕지수가 높은 사람은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알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 그리고 이타적인 삶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삶도 된다. 도덕성을 갖춘 마음과 말과 행동은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덕성을 갖춘 사회
최근에 한국이 세계 7번째로 국민 1인당 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천만의 ‘20-50 클럽’에 듦으로써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한국이 세계 리더 국가로 서기 위해서는 국가의 도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격을 갖춘 개인처럼, 국가는 국격을 갖추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런 국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최대의 교회들이 모여 있고, 짧은 시간에 세계가 괄목할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이에 합당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안팎으로부터 수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문제의 대부분은 교인, 목회자, 교회의 도덕성에 대한 질타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윤리적 행동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뢰도 하락의 원인은 교회의 물량주의, 개교회주의, 성직자의 타락, 언행의 불일치, 사회적 영향력 약화에 기인한다. 초대교회는 금과 은은 없어도 ‘예수의 이름’의 권세는 있었는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금과 은은 있어도 ‘예수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도덕성을 갖춘 교회
이제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대외 신인도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부터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나 신자들이 무슨 일을 할 때 기독교 전반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목회자 한사람, 교회 하나의 일이 전체 기독교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은 윤리목회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교단부터 헌법 제규정에 목회윤리 규정도 만들고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감동목회를 해야 한다. 교회 재정과 행정의 투명성도 확보하여 교회 안팎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믿음의 생활화가 중요하다. 

윤리목회 하는 목회자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세상을 선도해야 하는 교회는 오히려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세상이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변화의 트렌드는 “행위(Doing)에서 존재(Being)로”, “소유(Possess)에서 공유(Access)로”, “성공(Success)에서 의미(Significance)로”, “속도(Speed)에서 방향(Direction)으로”, “성장(Growth)에서 성숙(Mature)으로”, “사업(Business)에서 사역(Ministry)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적용하고 변해야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 성장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목회다. 건강한 교회는 자연적인 성장을 가져온다. 목회자와 신자간의 영적이고 정서적인 건강한 관계가 중요하다. 건강한 관계는 목회자 자신의 사람됨에서 시작된다. 목회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신자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잘 돌보는데 있다. 우리는 지금 권위의 붕괴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건강한 권위는 필요한 것이지만 주장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영적 권위는 권위나 권리를 요구하거나 행사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권리를 포기할 때, 오히려 영적 권위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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