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년차 교단 총회가 열릴 때 팡파르처럼 성결교회 노래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성결교회 노래는 으레 지방회와 총회가 열릴 때만 아니라 지방회와 총회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부른다. 지금은 원로목사로 가끔 교단 행사에 참여하여 성결교회 노래를 부르게 되지만 그때마다 내가 성결교회 목사가 된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성결교회는 나의 영적인 고향이요 집이요 또한 요람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내가 성결교회 목사가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우리 교단 창립 70주년을 맞이해서 서울의 장충체육관에서 7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했었다. 그때 교단 창립 70주년 노래가 불려졌다. 그 당시 총회 교육국에서 가사를 공모했는데 감사하게도 공모에 내가 당선되었다. 내가 70주년 노래 가사 작사자이다. 그때 참으로 기쁘고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교단 70주년 노래는 교단 창립 70주년 잔치 때 단 한 번 불렀다. 그 후 역사 속에 깊이 묻혀버려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에 나는 총회본부를 찾아가서 당시 친구인 교육국장에게 교단가를 제정하여 부르자고 건의했다. 이 때 친구는 한마디로 단칼에 거절했다. 

“이 목사,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니 찬송가가 있는데 뚱딴지같이 무슨 교단가야.” 그래도 다시 또 신신당부를 했다. “왜 안 돼. 학교는 교가가 있고 군대는 군가가 있고 아니 큰 회사도 사가가 있는데 교단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친구는 내 건의에 생각해 보겠다고 하기는커녕 별소리를 다 한다고 핀잔만 했다. 그러나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오고 또한 꿈은 이루어진다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 뜻이 있다면 길이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총회대의원으로 심리부에 있다가 그 다음 해는 총회 음악부원이 되고 2년 후는 마침내 총회음악부장이 되었다. 바로 이때가 기회라 여기고 총회가 열릴 때 총회음악부에서 교단가를 만들자고 결의. 총회 석상에 상정하여 통과됐다. 

이에 가사를 전국교회 성도들에게 공모했지만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고민 중 김성호 목사에게 가사를 의뢰했다. 이명직 목사의 많은 저서들 중에서 우리 교단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사중복음의 뜻이 담긴 것 중 발췌해서 가사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여 극적으로 가사는 이명직 원작에 나인용 작곡으로 성결교회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교회음악부와 교육국장과 가사를 거듭 수정했다. 얼마 후 노래 가사 중 3절에 ‘빛과 소금이 되라’ 한 가사가 예수님 말씀대로가 아닌 것을 늦게 발견했다. 이를 어쩌나 고민 고민 하다가 예수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이라’로 수정했다. 이렇게 수정하는데도 무려 2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총회음악부는 성결교회 노래를 전국교회에 빨리 보급하기 위해 성결교회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하여 전국교회에 무료로 보급했다. 또 총회음악부장으로 2년 임기 동안 성가합창제와 음악세미나를 전국을 다니며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쁘고 보람된 일은 교단가인 성결교회 노래를 만든 것이다. 찬송가에는 내가 작사한 557장과 136장이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우리 교단가인 성결교회 노래를 만든 것이 더 감사하고 보람되며 자랑스럽다. 

우리 교단은 성결교회 노래처럼 성결의 빛이 지금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곳곳 오지의 땅까지도 빛나고 있는데 더욱 성결복음의 빛이 성령의 바람을 타고 온세계에 퍼져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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