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망이 없는 어르신들 
인생의 끝자락에서 영혼 전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 전해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으로 중생·성결·신유·재림의
사중복음으로 천국 소개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언 15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한 귀퉁이에 묻었던 이야기. 이젠 꺼내려 합니다.

양로원에서 권사님과 같은 방을 쓰시던 한국 할머님. 유독 까칠하셨습니다. 권사님을 뵈러 가면 ‘왜 왔냐!’고 퉁명스럽게 대하셨습니다. ‘권사님 뵈러 왔어요’ 하면 ‘뭘 그리 자주 찾아 오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시던 분.

권사님의 두 손을 잡고 기도할 때면 심술궂게 소음을 내셨습니다. 갑자기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시고, 방문을 ‘꽝~’ 닫기도 하시고, 침대를 삐걱삐걱 흔들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시며 심술을 부리셨습니다.

양로원 복도를 나오다 우리를 보면 피해서 멀리 빙 돌아서 가시기도 했고, 어쩌다 마주치면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셨습니다. 가까이 하긴 너무 힘드신 분. 목사라고 하니 차별 아닌 차별로 마음 불편하게 하셨던 분.  

양로원에서 만난 까탈스런 할머니
할머님이 이러신데 따님은 한 수 더 뜨셨습니다. ‘기도할 땐 방 밖에 나가서 하면 안 되냐?’는 둥. ‘우리 엄마 전도한다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둥. “우리 엄마는 절에 이름 올려놓고 치성 드리니 가까이 하지 말라”는 둥. 만날 때마다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그것도 진지하고 분명하게, 경계하시면서. 그러니 따님도 가까이 지내긴 글렀습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가능하면 서로 맞부딪히지 않으려 했고, 할머님과 따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목사이고, 양로원 사역을 하니 뵐 때마다 목례 정도는 하고 지냈습니다. 그저 인사치레로.  

성격들이 까칠한 것은 못 본 체 하면 그만입니다. 종교가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고 늘 마주해야 하는 진짜로 힘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냄새입니다. 아주 고약한 소변 썩는 냄새. 이것은 시신이 부패할 때 내는 악취보다도 훨씬 더 심합니다.  

양로원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기는 이 냄새. 양로원에 거주하시는 대부분이 많은 약을 복용하십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약을 매일 드시니 소변냄새가 지독합니다. 그것도 일손이 부족해 차고 계신 기저귀를 제 시간에 갈아드리지 못하면 소변이 썩어 아주 심한 냄새를 풍깁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게다가 양로원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치매환자이십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니 생리현상에 둔감하십니다. 응가를 하셨는지, 소변을 지리셨는지 잘 모르십니다.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스텝들이 많이 살피기는 하지만 일손이 딸릴 때는 이 냄새 저 냄새가 뒤섞여서 풍깁니다. 특히 응가와 소변이 뒤엉켜서 내는 냄새는 정말 참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 할머님은 거의 냄새를 달고 지내지 않았습니다. 까칠한 성격만큼 얼마나 깔끔하셨는지 모릅니다. 옷매무새도 늘 단정하시고, 손발도 깨끗하시고, 손톱도 길지 않으시고, 눈곱도 거의 없으십니다. 특히 머리는 항상 빚질을 하시고 매만지셔서 차분합니다. 흐트러진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찾아간 양로원. 방 안에 그 할머님이 안 계십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몇 년간 뵌 시간이 있으니 궁금했습니다. 기도 후 권사님께 여쭈니 병원 가셨다는 겁니다. 그 말씀에 ‘한번은 찾아뵈어야 하겠다’는 맘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 방문 앞에 서는 순간. 아주 짧은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이 간호하고 계시는 겁니다. 평소 뵈었던 ‘그 따님’이 아닌 다른 따님. 사실 가면서 속으로 걱정했습니다. 따님이 평소처럼 대하면 어쩌나 하고. 문전박대를 당하면 어쩌나 하고. 워낙 불편하게 하셨던 분이라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다른 분이 계신 겁니다. 목사라고 소개하니 ‘자신은 일본서 온 딸’이라는 겁니다.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급히 일본서 오셨다는 겁니다. 어머님과는 다르게 성격이 좀 수더분하시고 넉넉하십니다. 그러니 일단 마음이 놓였습니다. 

할머님을 위해서 ‘기도해도 괜찮겠냐?’고 하자 자신은 종교를 가리는 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엄마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흔쾌히 말씀하십니다. 만약 평상시에 뵙던 그 따님을 만났더라면, 기도는커녕 할머님을 뵙지도 못했을 텐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엄마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혼수상태였는데 방금 전에 의식이 돌아왔다는 겁니다. 아마도 ‘목사님을 만나려고 의식이 돌아왔나 보다’고 하시는 겁니다. 

침대에 누워 계신 할머님. 마지막 숨을 내쉬는 듯한 모습. 그 모습을 보니 평소 까칠한 분이라는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마음 불편하게 하셨던 분이라는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건강회복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아멘’
쾌유를 위해 간절하게 청원한 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기도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순간 귀를 의심하는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할머님께서 ‘아멘~~!’하시는 겁니다. 기도 끝에 아멘을 하시는 겁니다. 교회나 예수님에 대해 엄청 부정적이시던 분, 목사를 무슨 웬수보듯 하셨던 분이 ‘아멘’을 하시는 겁니다.  

하도 엄청난 반응이라 병상 끝에선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대신 차를 타고 오면서 사모에게 물었습니다. 기도 후 아멘 소리를 들었냐고 하니 분명히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도 엄청 놀랐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권사님과 기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기도 후에는 ‘아멘’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크게 놀란 일은 후에 일어납니다.

며칠 후에 찾은 양로원. 병원에서 퇴원해 다시 오신 할머님. 여전히 일본서 오신 따님이 옆에 계십니다. 인사를 하자 돌아온 첫 마디. ‘엄마가 이상하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혼수상태이셨는데 저희 도착 조금 전에 의식이 돌아왔다는 겁니다.

‘할머님!’하고 부르니 아주 약하게 대답하십니다. ‘기도해도 괜찮겠냐?’고 따님께 물으니 ‘언제든지 좋다’ 하십니다. 이번엔 할머님께도 여쭈었습니다. ‘할머님! 기도해도 괜찮겠어요?’ 돌아온 놀라운 대답. ‘좋다’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다
기력이 약하시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짧게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도 기도 끝에 ‘아멘~’ 하시는 겁니다. 아멘 하시는 소리를 분명히 또 들었습니다. 아주 엄격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자녀들도 모두 불교신자이고 본인도 진실한 불교신자라고 하신 분 입에서 나온 소리. ‘아멘’

아멘 소리를 듣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께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든 겁니다. 해서 아주 간략하게, 그렇지만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도리를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아멘하고 대답하시는 겁니다.

아주 순식간이지만, 아멘이 여기까지 진행되자 세례를 베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확인 후, 사모가 컵에 담아온 수돗물로 약식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다시 혼수상태가 되신 할머님. 

이것이 할머님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더 이상 할머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혼수상태에서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자 댁으로 모셨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론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엎드려 감사의 눈물기도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지요. 그 할머니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것도 장장 80만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셨습니다(그때 할머님 연세가 92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92세×365일×24시간’ 하면 80만 시간이 훨씬 더 됩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벧후 3:9 표준 새번역)

한 영혼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선 지금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를 기다리십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가족뿐 아니라 양로원에 오시는 분들도 압니다. 한번 들어오면 웬만해선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삶의 대부분을 정리하고 들어오십니다. 오셔서 생활하면서 또 깨닫는 게 있으십니다. 그건 바로 삶의 희망이 더 이상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냥 건강한 삶을 유지하시는 걸 최고로 여깁니다. 

양로원 예배 때 많이 강조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성결의 복음입니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 예배를 드릴 때 침 흘리며 졸다가도 ‘영원한 삶’을 전하면 눈망울이 초롱초롱해 지십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고 말씀 드리면 고개를 번쩍 드십니다. 그러니 중생을 강조 또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몸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니, 늘 약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유능한 의사라 할지라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있음을 아시니 주님의 치유하심을 갈망합니다. 그분의 치료하시는 능력을 의지합니다. 당연히 주님의 신유복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모든 분들이 영원한 삶으로 부활한다고 말씀드리면 표정이 얼마나 밝아지시는지 모릅니다. 비록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정신은 희미해 가지만 죽음 너머 저 세상을 갈망하시는 겁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 오늘도 양로원을 찾아갑니다. 비록 냄새 심하게 나고 힘든 환경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니 최선 다해 감당합니다. 예배를 기다리는 눈망울들이 있으니 기쁜 맘으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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