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교회’라는 수기는 총 21편 중 12번째 글이었다. 심사를 하면서 집중력이 흐려지고 눈이 침침해질 무렵, 마음을 시원하고 웃음짓게 하는 반딧불이 교회 수기를 읽게 되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정직하다. 슬픈 일, 눈물흘릴 상황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수기는 단문으로 시작했다. 서두는 이러했다. ‘모든 교회는 부흥을 꿈꾼다’. 그렇다.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나름 정해놓은 교회의 부흥을 꿈꾼다. 교회의 부흥을 포기하고 사역하는 목회자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현실에서 목회는 늘 힘들다. 변화무쌍하다. 생물처럼 수시로 변한다. 참아내야 하는 것이 목회이다. 그는 교회 개척이후 성장과 생존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산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결혼 이후 태어난 딸의 질병의 문제, 오랜 세월 들락거리는 병원을 놀이터삼아 아이를 키우고, 병원을 휴가지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교회의 부흥이었다. 

“한밤에 등대는 아니더라도 반딧불이처럼 한번이라도 예수님의 빛을 깜빡거리고 싶었다”. 그는 초라한 빛까지도 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목회를 소명으로 여기는 것뿐 아니라 취미로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 대목에서는 목회자의 열정과 헌신이 드러나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목회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고단한 가운데 목회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해야 하고,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취미로 빗대어 고백한 것이다. 

이 순간,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를 일컫는 말이다. 티핑 포인트는 없었던 것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뿐이다. 수면 아래 있던 것이 수면위로 오르는 것이다. 반딧불이 교회 수기는 보이기 위해 안에서 끝없이 몸부림을 반복하는 목회자의 희생과 헌신, 열정과 애씀을 엿볼 수 있었다.  

자기 목회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희망적으로 자기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이 꽤나 자기관리가 잘되고 있는 목회자이다. 그의 목회사역에 티핑 포인트는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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