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도 전도사 권영기 목사(역촌교회)

명심도 등 기독교 희귀 자료 수집
교단에도 없는 역사 자료도 수두룩 
이성봉 목사 관련 최고 전문가로
명심도 강의와 드라마 제작까지도

 

하나님은 권 목사의 손 바닥에 책 하나를 쥐어 주고는 “네가 이성봉 목사의 사역을 이어라”는  말을 남기다 

‘명심도’ 부흥 사역과 함께 내가 모은 자료들을 사람들과 공유할 한국교회 근현대사 역사 박물관을 설립하고 싶다

 

권영기 목사(역촌교회)는 교단 최고의 수집가로 기독교 근현대 자료를 수집하고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한국교회 초중기 역사 사료를 수집했다. 그에게 ‘기독교 고서적’은 보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선진들의 놀라운 신앙과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큰 것도, 고서적에 대한 가치를 그리 높이 여긴 것도 아니었지만, 약 10여년 전 우연히 시작된 한국 기독교 역사 사료 수집이 이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일상이 됐다. 

역촌교회 한 켠에 자리한 담임목사 사무실에 들어가 보면 그가 그토록 자랑하는 고서적들이 사방을 빼곡히 메운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서적들이 가득한 사무실에는 한국교회 초기의 성경, 찬송가부터 당대 교계를 대표했던 유명 목회자 및 부흥사들의 각종 저서들이 모여 있다. 

교단과 기독교 희귀 자료 
마치 한국교회의 역사관을 보는 듯한 이곳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천로역정’이었다. 정확히는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텬로역정’(1895년작)으로 권영기 목사가 가장 귀히 여기는 사료 중 하나다. 

권 목사는 “’텬로역정’은 단순히 기독교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번역 소설이다”면서 “조선사람들이 홍길동전, 춘향전 등의 이야기 류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안 서양 선교사들은 서양의 기독교 소설을 번역해 이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텬로역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목사에 따르면 ‘텬로역정’은 단순히 문학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게일 선교사가 들고 온 천로역정 원본에는 삽화 48장이 수록됐는데, 이를 조선의 유명 풍속화가였던 김준곤 화백이 동양화로 재해석해 새로이 그려 넣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에 원근법이 적용됐는데, 이것 역시 우리나라 최초였던 것이다. 

이 외에도 성결교의 시작을 알 수 있는 사료들도 다수 수집했다. 성결교를 설립한 김상준 목사의 ‘사중교리’와 ‘요한묵시록강화’가 있다. 교단에도 없는 교단의 제1회 총회록, 제1회 지방회록, 그리고 남전도회보 창간호, 서울신대 학보 창간호 등 교단 초기 역사자료도 한 곳에 모았다. 없는 자료도 많아 교단의 역사자료 보존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명심도’ 고서적 수집 계기
그렇다면 권영기 목사는 도대체 왜 기독교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를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당연한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은 바로 ‘명심도(明心圖)’였다. ‘명심도’는 1950~60년대까지 한국교회 초신자 교육 및 전도용으로 쓰인 그림책으로 나이 지긋한 성도들에게는 ‘박군의 심정’이라는 책으로 흔히 기억된다. 

사실 권영기 목사는 ‘명심도’를 모르는 세대다. 오히려 권 목사는 명심도를 이어 2000년대 초까지 한국교회를 주름잡던 ‘4영리’ 세대였다. 그런 그가 ‘명심도’를 만난 것은 오롯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3년 4월 7일, 그 날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권 목사에 있어 다시는 경험치 못할 놀라운 역사가 이뤄진 날이기 때문이다. 

속초교회에서 사역할 당시, 임직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 곧바로 곯아 떨어졌는데,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형상은 없었지만 하나님임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권 목사의 손 바닥에 책 하나를 쥐어 주고는 “네가 이성봉 목사의 사역을 이어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리고는 잠시 잠에서 깨게 됐는데, 너무도 놀라운 경험에 그는 혹여 잊을까 하나님께 받은 책의 제목을 급히 메모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가 적은 메모장에는 바로 ‘명심도’라는 세글자가 적혀 있었다. 

고 이성봉 목사는 ‘한국의 무디’로 불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부흥사였다. 그리고 ‘명심도’는 바로 이성봉 목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이면서, 추후 부흥사가 되어 각종 집회에서 사용하던 전도책자였던 것이다. 

“네가 이성봉 목사 사역을 이어가라”
놀라운 일은 계속 이어졌다. 꿈을 꾸고 이틀 후, 예전부터 다니는 중고서점의 주인에게 전화가 왔는데, 기독교 고서적을 하나 구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살 것 같지 않고, 목사님이니 혹 관심을 갖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연락했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의 제목을 물으니 그의 대답이 바로 ‘명심도’였다. 

권 목사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때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성봉 목사처럼 명심도를 통해 다시 이 시대를 부흥케 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며 “그 날로 이성봉 목사의 사역을 이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오직 명심도에 매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개인 전용기를 타고 온 ‘중국판 명심도’
그 이후에도 놀라운 경험들은 계속됐다. 권 목사는 당시 한국에 명심도가 전해지기까지의 모든 명심도(독일→미국→중국→한국)를 수집했는데, 독일판(19세기 초)과 미국판(19세기 중)은 어렵사리 혼자 구할 수 있었지만, 중국판(19세기 말)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에 우연히 교회 성도가 결혼한 중국인의 지인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책을 소유했던 수집가는 절대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지만, 한국의 목사가 구한다는 말에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고백하고, 이를 넘겨줬다. 

당시 지인의 동생이 항공사의 대표였는데, 혹여 택배로 보내면, 분실될까 직접 개인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를 전해주고 가기도 했다. 또한 이성봉 목사가 쓴 ‘명심도강화’를 수집할 때였는데, 교회 권사님 친구 한 분이 자기 집안에 보관되던 ‘명심도강화’를 우연찮게 전해주게 됐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살펴보다가 책의 뒷면에 글귀를 보게 됐는데, 그게 바로 ‘속초성결교회’였다. 

권 목사는 “50년 전 속초성결교회에서 전도용으로 쓰이던 명심도가 전국을 돌고 돌다가 다시 속초성결교회로 와 내 손에 안착한 것이다”며 “온 성도가 이를 함께 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권 목사는 명심도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명심도를 깊게 연구하다 보니, 이성봉 목사의 자료를 찾게 되고, 당시의 선진 목회자들의 자료들도 수집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 하나 늘려나간 자료들이 어느새 500여 권에 이르게 됐다. 처음 명심도에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한국교회 기독교 역사 전체를 아우르게 된 것이다. 

명심도 전도사로 활약
물론 ‘명심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곧바로 부흥 사역으로 이어졌다. 권 목사는 ‘21세기 다시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책을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심도’ 강의를 하고 있다. 권 목사의 책은 ‘박군의 심정’(기독교부흥협회)에서 50년 만에 이어지는 현대판 ‘명심도’로, 이성봉 목사가 ‘한국의 무디’라면, 권영기 목사는 21세기 이성봉 목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사역에 대해 교단 증경총회장 조일래 목사는 “하나님은 권영기 목사를 통해 과거의 명심도가 아니라, 21세기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타일의 그림과 글로 재탄생시키셨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밖에도 이성봉 목사의 삶을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했으며 주인공 역도 맡았다.

권영기 목사는 명심도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명심도는 그림으로 전도하기에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인다. 단 9장의 그림에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삶이 다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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