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는 아무 것도 모르는군. …데우스와 오오히를 혼동한 일본인은 그때부터 우리의 하나님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런 다음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 언어의 혼란이 없어진 뒤에도 이 굴절되고 변화된 신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거야. 자네가 아까 말한 포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 거지”(엔도 슈사쿠, 『침묵』·번역 공문혜)

▨… 일본의 권력자가 배교자의 표본으로 살려둔 페레이라를 찾아 일본 땅에 숨어든 신부 로드리고는 체포되어 다른 신도들처럼 주님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후미에) 앞에 섰다. 동판을 밟아 배교자가 되면 농민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동판을 밟지 않아 순교자가 되면 농민은 목숨을 잃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후미에’의 주님이 말씀하셨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 우리는 이 로드리고 신부가 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갈구한다. 오늘의 교회는 로드리고가 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도록 이끄는 영성이 우리 안에 형성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오랜 역사를 두고 많은 순교자들과 성자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마침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 때는 인류의 역사는 낭떠러지로 굴렀다.

▨… 그 끔찍한 예가 제2차 세계대전 아니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은 7,0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사지로 몰았으며 마지막에는 핵폭탄으로 그 숫자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산 채로 녹아 없어졌다. (참조·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인간이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자하는 로드리고 같은 신앙인이 제2차 세계대전 어느 진영에도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 우리교단 총회가 개회되었다. 누구보다 세상을 걱정하고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의 포성에 가슴을 저리며 미자립의 이중직에 주님의 용서를 구한다. 도스토옙스키의 글에서처럼 한 인간의 내부에 얼마나 다양한 인격이 들어 있을 수 있는가를 묻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를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했는가만을 자문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이 아무도 듣지 못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증언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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